간새다리의 한국어 가르치는 이야기

몇 년만 기다리세요.-초보 강사의 해외 진출을 반대합니다. 본문

나는 한국어 강사다

몇 년만 기다리세요.-초보 강사의 해외 진출을 반대합니다.

간새다리 2021. 12. 9.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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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2월에 쓴 글을 비공개로 돌렸다가 다시 공개합니다. 그래서 현재 상황과 맞지 않는 것도 많이 있으니 감안하고 봐 주세요.
  제가 이전에 쓴 글들에 대해 변명을 하자면, 당시 분위기와 상황 상, 한국인 또는 한국계가 아닌 한국어 강사가 많지 않던 시절이었고 해외 기관들이 활성화 되는 초창기이다 보니 한국어 교육 기관이 지금보다 훨씬 더 국내 중심적이었기 때문에, 저도 제 글을 읽는 분들과 일반적인 한국어 강사를 '한국인'으로 상정해 글을 썼고 특히 이 글에서는 국내 기관들이 더 체계가 잡혀 있는 것을 전제로 했습니다.
지금도 한국어 교육계가 국내 중심적인 점이나 국내 기관들이 상대적으로 체계적인 경우가 많은 점은 비슷하지만 이 글 속의 시점보다 해외 기관이 훨씬 더 발전했고 인프라도 더 다양해졌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으며 읽으시는 분들도 알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글 속의 저는 해외 파견지에 있지만 현실의 저는 한국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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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나는 해외에 있다. 어느 대학의 한국학과에 파견을 나와 있다. 학생들은 한국학 즉, 한국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법 등의 한국 전반에 걸친 이론을 공부하고 그 학문을 이어가기 위한 기초 지식(과목)으로 한국어를 배운다. 이곳의 한국어 수업은 학문이 아니라, 어학인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이것을 잘 기억해 주길 바란다.
  이곳에는 나 외에 한국어를 가르치는 전임 강사 분이 한 분 더 있다. 이 분은 이곳에서 유학을 하고 학위를 받고 정착하게 된 분인데 한국어를 가르치게 된 계기는 잘 모르지만 언젠가 듣기로는 현지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지 어언 20여 년 가까이 된 것 같다. 이 분 외에도 여기 또는 주변 도시/국가에서 한국어를 오래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이나 최근에 가르치기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직간접적으로 듣는다.

  원래부터도 나는, 초보 강사가 해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에 찬성하지 않았는데 주변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막연했던 그 이유들이 구체화되고 더욱 확고해졌다.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특히, 졸업하자마자 해외 진출을 꿈꾸는 대학원생들 혹은 교원 자격증을 받자마자 연수원/교육원에서 연결 시켜 주는 해외 학교로 나가려고 기다리는 연수생들과 교육을 마치자마자 연수생들을 여기저기 보낼 생각을 하며 그것을 실적이라고 자부하는 연수원 관계자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외국에 자리가 생겨 나갈 기회를 기다리는 초보 강사들-에게 납득시키는 것이 얼마나 쉬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내 얘기를 하면서 좀 멀리 돌아 가야 할 것 같다.

  나는 교사 양성 과정을 마친 후에 학원, 중소규모의 대학교 어학당, 규모와 학생 수, 역사 등의 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어학당을 거쳤고, 그 사이사이 다양한 학습자 대상의 개인 수업도 했다. 이 기관들을 거치면서 단계적으로 배운 것들이 많다.

  학원에 따라 다르지만, 그 당시에는 흔히, 학원은 개별적으로 수업을 하거나 개인 수업 위탁을 받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동료들과의 교육과정 회의 등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각주:1]  그래서인지 대학 어학당들이 신입 강사를 채용할 때 경력으로 인정 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교원 자격증 승급 심사의 교수 시간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이게 옳은지 여부는 이 글에서는 따지지 않겠다.-

  내가 채용된 학원은 초반에 원장의 포부가 커서 대학 정규과정에 맞먹는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싶어했고, 그래서 10주 200시간 교육 과정을 설계하도록 했고 각 수업에 대한 교안 작성과 수업 보고서를 의무화했다. 그 당시 그곳의 한국어 강사는 교사 양성 과정을 마치고 개인 수업 두어 달 해 본, 외한교 전공 대학원 1학기를 막 마친 나와 국내 유수의 한국어 교육 기관에서 오랜 경력을 쌓고 코디네이터로 채용된 김 선생님 이렇게 둘이었다. 김 선생님은 한국어 교육을 전공하면서 만난 그 어떤 교수들보다 나에게는 훌륭한 선생이었고 멘토였다. 그분은 내게 교안을 쓰는 법, 교안을 활용하는 법, 부교재를 만드는 법, 한국어 문법을 국어가 아니라 외국어로서 접근하는 법을 지도해 줬고 시강을 하면서 나의 장단점을 찾아줬다.

  학생수가 적어서 기간에 비해 수업은 많이 하지 못했지만 난 어디에서도 배우기 힘든 것을 1:1 과외 수업을 받은 것이나 다름 없이 교육 받았고 그 때 배운 실전과 대학원에서 배운 이론이 지금의 나에게 좋은 거름이 됐다고 생각한다. 6개월 후 그 분이 떠난 다음에 내가 그 분의 자리를 메꿔야 했을 때도 그 동안 그 선생님에게 배운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덜 당황스러웠다.

  그 학원에서 일하면서 얻은 또 하나의 소득은 바로 직접 교과 과정을 설계하고 부교재를 만드는 등 맨땅에 헤딩하듯 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체계가 잡힌 어학 기관에 들어 가면 교과 과정 설계 같은 것은 짬밥이 있어야 해 볼 수 있고 부교재나 활동 등도 이미 만들어진 것을 쓰거나 직접 바꿀 기회도 그렇게 자주 오지 않거니와 온다 해도 이미 있는 것을 조금 변용하는 범위에서만 바꾸는 경우가 많다. 또, 대부분의 어학기관이 자신들의 책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양한 교재를 연구할 기회가 없고 이미 연구하고 분석해서 만든 공용의 교안을 사용하므로 스스로 연구하는 범위가 좁아진다. 그런데 이 학원에서 일하면서는 3-4개 어학당의 교재를 가지고 교과 과정을 설계했고 새로운 활동을 만들어야 했고 개인 수업 하듯이 진행한 수업의 경우에는 학생이 원하는 방향의 텍스트와 활동을 만들어 내야 했다. 그러면서 어떤 학습자, 어떤 교재를 교안 없이 던져 줘도 겁 먹지 않게 됐다[각주:2].

  그러나 내가 경험한 '맨땅에 헤딩하기'가 값진 경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모든 것을 가르쳐 준 멘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분의 가르침 없이 혼자서만 다 해야 했다면 그 때 만들어 놓은 부교재, 교안 파일 등은 모두 컴퓨터에서 지워졌을 거다.      

  그 학원을 그만둔 후 취직한 곳은 중간 정도 규모의 대학교 어학 기관이었다. 학원에서는 사수에게 사사 받는 기분이었다면 여기에서는 처음으로 급별 회의라는 것도 해 보고 시험 문제를 만들고 동료들에게 피드백도 받으면서, 학원에서 일하는 동안 내가 얼마나 독불장군 식으로 일을 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다. 특히 멘토였던 김 선생님이 그만둔 후 나 혼자 누구하고도 상의하지 않고 만들었던 자료들이 얼마나 부실했는지, 문법과 어휘에 대한 나의 해석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깨달았다.

  나와 같은 수업을 하는 동료 강사들의 학습 요소에 대한 해석과 접근 방식, 그리고 교사 발화, 유의적 연습과 활동, 과제에 대해 나는 생각도 하지 못한 아이디어들을 들으면서 자극 받았고 많이 배웠고 더 진지하게 수업에 임하게 됐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일하면서 더 큰 규모의 어학기관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학 연수를 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초급부터 고급까지의 정규 프로그램 외의 다양한 학습자군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곳을 찾아 논문을 마친 후 직장을 옮겼다[각주:3]

  새로 옮긴 곳은 이전에 일한 곳보다 규모도 컸지만 여러 면에서 체계적인 교과 과정과 교수법을 갖고 있었다. 신입 강사 교육도 좀 더 엄격했다.[각주:4] 이곳에서 배운 것 중 다른 직장과 가장 차별적인 것은 '평가'와 언어 기술(skill) 별 교수법이었다. 이곳에 와서 시험 문제를 만들고 코디네이터와 동료들에게 2중, 3중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이전 어학당에서의 시험 출제는 그 기준과 타당성 면에서 좀 엉성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각주:5]. 또 의사소통 언어 교수법을 지향하는 통합 수업에서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각각의 수업을 효과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을 배운 것이 그 부분을 잘 몰라 계속 헤매던 나에게는 정말 큰 수확이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바랐던 것처럼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학습자군을 대상으로 다양한 수업을 하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런 10여 년간의 경험을 하고 해외로 나온 지금, 가장 아쉬운 것은 주변에 상의할 동료가 없다는 것이다. 초급부터 고급까지 최소한 한 학기씩은 수업을 해 봤고 어떤 책으로 어떤 수업을 해도 직접 교과 과정을 짜고 수업을 구성할 만큼의 내공도 있(다고 생각하)고 시험 문제를 내면서 자가 피드백을 여러 번 할 정도로 훈련이 되어 있다. 그렇지만 동료들과 토론할 수 없다는 것은 아쉽고 불안한 일이다.

  동료와의 상의는 수업 방식과 교과 과정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특정 문법 또는 어휘의 용례와 제약 조건이 맞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각주:6] 물론 주변에 있는 한국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있지만 한국어 강사가 아닌 경우에는 내가 제기하는 의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 있을 때 문법의 용례와 제약 사항 등을 알고 싶으면 나는 이중 확인을 하곤 했다. 한국어 강사인 동료들과 한국어 강사가 아닌 동생들에게. 한국어 강사인 동료들이 '강사'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편견(?)이 있기 때문에 짚어 내지 못하는 부분을 일반 한국어 화자인 동생들에게 확인하고 동생들은 한국어 강사가 아니기 때문에 접근하지 못하는 부분을 한국어 강사인 동료들에게 확인하고.

  초보 강사가 해외에 나간다는 것은 내공도 데이터베이스도 노하우도 없이, 훈련도 안 되어 있는 채로 동료와의 상의도 할 수 없는 고립된 곳으로 간다는 것이다.

  나의 언어 습관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학생의 문장을 평가하거나, 매우 까다로운 문법을 사용할 때의 여러 제약을 찾아 내지 못해 학생에게 얼버무리며 설명할 때도 있을 것이고, 분명히 용법이 다른 두 개의 문법 요소나 어휘의 차이점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서 그냥 같다고 말해 버리거나 다르기는 한데 이유는 없다고 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에게서 피드백을 받을 수도 누군가와 상의할 수도 없으니까 그 상태로 머무를 확률이 높다. 자신이 변별력 있고 타당한 평가를 하고 있는지 아무에게도 물어볼 수도 확인할 수도 없을 거다.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나 접근 방식을 참고하는 일도 노하우를 들어 볼 기회도 부족하니 발전 속도가 더딜 가능성이 높다.

   이곳의 전임 강사는 현지어를 잘하고 현지 문화를 잘 알기에 학생들을 잘 이해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이분의 수업 방식은 오래 전 내가 중학교 교실에서 영어 수업을 듣던 방식과 비슷했다. 학생들은 많은 양의 문법과 어휘를 배웠지만 그것을 엮어 말하거나 쓰는 일에 전혀 익숙하지 않았고 어휘나 문법을 배울 때도 모어의 단어나 표현과 1:1로 매치해서 배웠고 수업활동은 대부분 문법 번역식의 연습이었다. 한 학기에 서너 과목의 한국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3,4학년이 되었을 때도 왜 초급 수준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는지 그 분의 수업 방식을 보고 알 수 있었는데, 그분은 이렇게 열심히, 많이 가르치는데 왜 학생들의 실력이 학습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분이 열심히 일한 것, 그곳에 한국학과를 정착시키기 위해 자신의 젊은 날을 바친 것은 인정하고 존경하지만, 그 분의 한국어 수업 방식이 옳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누구나 처음은 미숙하다.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의 산수도 누구나 당연히 잘 가르칠 수는 없듯이 한국어 모어 화자(또는 고급 화자)라고 해도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처음일 때는 미숙할 거다. 그러니 초보 강사가 미숙한 것을 비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초보일 때 멘토나 동료들과 함께 고민하고 돌아보고 자극을 받고 다시 시도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많이 다르다.

 극단적으로 가정해 보면, 미숙한 상태로 동료들과 교류할 기회가 적은 해외의 기관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기회를 얻어, 본인이 맞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하고, 다른 사람과 수업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를 하지 않은 채 같은 방식을 유지하는 데다가, 그 지역의 거의 유일한 한국어 강사라서 한국어 학습을 원하는 학생들은 다른 대안과 비교할 수도 없이 당연히 나를 선택한다면 나는 내 방식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가질 수 있을까?

  좀 과장해서 말하면 초보 강사인 당신이 해외에 나가서 가르치면 이런 상황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거다. 그곳에, 당신을 이끌어 줄, 좋은 멘토가 될 사람이 있지 않다면.

 사실 그런 멘토 역할을 할 자질을 갖춘 사람이 있는 곳이라 해도 그곳(해외 교육 기관)은 당신을 가르쳐 가면서 일을 하기에는 너무 일이 많고 여유가 없는 곳이다. 그곳은 바로 실전에 뛰어 들어 수업을 해 낼 사람이 필요한 곳인 경우가 많다. (해외 일자리가 대학이 많다는 것, 그 외에는 세종학당인데 세종학당 역시 수업 외 업무가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선배 중에 해외 한 대학 한국학과에서 어학 전임 강사로 일하는 사람이 있는데(거의 교수급) 수업이 너무 많아서 새 강사를 채용했고 그 강사는 막 1년의 경력을 쌓은 사람이었다. 선배는 행정적인 일처리에 수업 설계까지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척하면 알아 듣고 일을 알아서 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 강사는 가르쳐 가면서 해야 했고 그나마 서로 말(마음)이 잘 안 통해서 힘들다고 했다.

   나의 이런 삐딱함에 반문을 던질 수도 있다. '아무 것도 못 배우지는 않을 거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해외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는 최대의 장점은 그 문화권/국가 학습자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는 것이고 그런 기회는 흔하지 않다. 특히 현재 한국의 학습자 출신 국가가 많이 치우쳐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외의 국가에서 수업을 해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기회다. 또한 너무 제약이 심한 한국 대학의 어학 기관들에 비해 내가 직접 만들어 낼 여지가 많다는 것도 좋은 점이다.(그러나 이것도 경험과 노하우가 바탕이 되었을 때 효과가 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강사 자신에게도 강사가 나가서 만날 학생에게도 손실이 더 크다는 거다.

  이곳의 학생들이, 그 많은 양의 어휘와 문법을 암기하고도 3,4학년이 되어서 한국어로 읽고, 듣고, 쓰고, 말하는 것이 암기한 양에 훨씬 미치지 못해 고학년 커리큘럼에 있는 한국학 학문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에 문제가 생긴다면, 다른 방식으로 한국어를 배웠다면 그런 문제가 덜 생겼을 거라면, 그건 학생들이 받아야 할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교실은 초보 강사의 미숙함을 훈련하거나 실험하는 곳이 아니다. 물론 그건 한국 내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일터 안팎에서 동료들의 피드백을 받을 가능성이나, 기관의 교육과정이나 교안 등 가이드라인을 따라야 하는 경우도 많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다른 점이 있다.

  또 많은 강사 풀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각 해외 기관의 상황 상, 강사 개인적으로도 단계적인 발전을 이루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일하는 동안 계속 같은 수준의 학급만 가르칠 수도 있고(학생들의 수강이 연속적이지 않은 경우, 자모~과거형까지의 과정만 몇 년째 계속 반복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1급만 해 봤는데 어느 날 갑자기 중고급 학습자가 나타나 레벨 테스트도 하고 그 학생에게 맞는 커리큘럼을 짜야 할 수도 있다.

   해외 채용의 기회가 매력적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일단, 당신이 어떤 교재, 어떤 수준의 학습자를 만나도 자신 있게 수업할 수 있을 준비가 되었을 때, 통합 수업을 하든, 과목별 수업을 하든 적합한 교과과정을 설계하고 수업을 운영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강사 개인에게도 그곳에서 당신에게 한국어를 배울 학습자에게도 바람직하다.  게다가 국내 한국어 교육 기관의 채용에 있어서도 모든 해외 경력이 다 높게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각주 같은 경력이라고 해도 한국에서 경력이 전무한 사람과 한국의 기관에서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쌓고 온 해외 경력은 다르게 생각될 수도 있다. 따라서 해외에서 경력을 쌓고 오면 국내에 돌아왔을 때 취업이 쉬울 것이라는 당신의 판단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거다. 물론, 요즘은 경력자를 많이 찾으니 경력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또는, 교수의 추천을 받아 해외에서 일했고 그 교수가 또 써 준 추천장으로 국내 기관에 지원을 한다면 더 쉬울 수도 있다.    

 또한, 요즘 해외 대학의 한국학과(또는 아시아학과)에서도 한국어 강사를 채용할 때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자신들과 교류하는 한국 대학에 파견을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요즘, 반드시 학부나 대학원이 아니더라도 자격을 갖춘 교육 기관에서 요구 조건에 맞는 수업을 들으면 한국어 교사 자격증 심사 신청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많은 평생 교육원이나 기타 교육 기관에서 수업을 제공하고 수료하면 해외 취업을 알선해 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쪽에서 왜, 무경력의 지원자들을 채용하려 하는 걸까? 즉, 근무지라는 면에서는 좋은 일자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기다려라. 그리고 다양한 학습자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하면서 내공과 실력을 쌓아라. 그러면 더 좋은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1. 지금도 학원별로 천차만별인 것으로 알고 있다. 굉장히 체계가 잘 잡힌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고. [본문으로]
  2. 후에 큰 어학 기관에 갔을 때 그곳에서 1-2년 일한 강사들 중에 다른 교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거나 자신들이 사용하던 교재와 다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교재는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는 것을 보면서 내가 얻은 기회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본문으로]
  3. 한국어 교육 기관들 특히 규모가 크고 명성이 높은 곳일수록 이전의 경력을 잘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에 옮기기로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옮긴 후에도 완전 초보 강사로 취급하는 것에 좀 힘들기도 했다. [본문으로]
  4. 물론 쓸데없이 위계질서를 강조하고 소위 '군기잡는' 일들을 많이 하는 것은 여전히 '체계적'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본문으로]
  5. 물론 이곳도 완벽하지는 않다. 여전히 평가의 타당성과 신뢰도 변별력은 강사들이 고민하는 부분이다. [본문으로]
  6. 늘 강조하지만 '교육'을 위해 가르칠 때는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아무리 원어민 화자라고 해도 자신의 언어 습관이 있어서 그것만 기준으로 삼았을 때는 잘못 가르칠 때도 있다. 나는 어색해서 그렇게 쓰면 안 된다고 했는데 사실은 문법적으로든 화용적으로든 전혀 문제가 없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본문으로]
  7. 동료가 2-3명 있는 곳이라고 해도 고립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대학 학부 수업이라면 서로의 수업에 간섭하지 않을 테니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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