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새다리의 한국어 가르치는 이야기

자유롭지만 자유롭지 않은 한국어 강사의 시간 본문

나는 한국어 강사다

자유롭지만 자유롭지 않은 한국어 강사의 시간

간새다리 2022. 1. 8.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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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2월 19일에 썼던 글입니다. 비공개했다가 다시 공개합니다. 10년이 훨씬 넘은 내용이니 감안하고 읽어 주세요.

 노파심에 의한 사족 : 누누이 강조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다른 직업과 비교해서 '매우 힘들다'거나 '매우 열악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열악한 부분도 존재하지만 제가 이 블로그를 통해서 하고 싶은 것 중 한 가지는 '허상 깨기'입니다. 사람들이 한국어 강사라는 직업에 대해 떠올리는 모습 중 과대 포장된 부분을 실제 경험을 통해 벗겨내고 싶은 것이죠.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간혹 한국어 강사라는 직업을 소개하는 기사를 읽을 수 있다.  그런 기사에서 공통적으로 소개하는 이 직업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가끔은 강사 인터뷰까지 동원해 9시부터 1시까지의 수업이 끝나면 그 이후의 시간은 아무 구속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데 한국어 강사가 '시간 강사'라는 점을 생각하면 굳이 이런 것을 강조하는 것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 시간 강사나 학원 시간 강사라는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강의 시간 외에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을 장점이라고 소개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한국어 강사도 이런 직업과 다르지 않은데 왜 굳이 그 점을 강조할까?
  그건, 한국어 강사는 '어학당/어학원'에서 근무하는 교직원일 것이라는 오해와 시간강사 대우를 받으면서도 하는 일은 근무성[각주:1]을 띠고 있는 탓에 모호한 정체성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어 강사는 시간강사고 시간 강사는 직업 성격상 수업 시간 외에는 구속 받지 않게 되어 있을 뿐이지 그것을 마치 대단한 이점이나 되는 양 강조하는 것은 굉장히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글을 읽고 한국어 강사가 시급이 아닌, 월급을 받으면서 직장에는 하루에 4시간만 머무르면 되는, 손쉽게 돈 버는 직업으로 착각할 것이 아닌가. 또, 말한 사람의 의도와는 다르게, 수업 4시간 외에는 전혀 일하지 않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 그럼 해당 진술의 진실성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국어 강사는 정말 수업 시간 이외의 시간은 자유로울까? 제도적으로 말한다면 이 진술은 사실이다. 수업 시간만 엄수한다면 정해진 출근 시간도 퇴근 시간도 없다. 물론 수업 준비, 숙제 검사, 교안 회의, 시험 출제 부교재 제작 및 정리 등등 수반되는 업무들이 있지만 다른 직장인과 달리 출근 이후부터 퇴근까지는 직장에 매여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므로 자기가 맡은 이런 업무를 정해진 기한 이내에만 한다면 중간에 뭘 하든 상관 없다는 의미에서 한국어 강사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기관에서 강사의 시간을 대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면  엄밀히 말해 사실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 대부분 기관들이 강의 배정을 개강 며칠 전에서야 발표하는데 오후반도 개설되어 있는 학교의 경우 오후반이 될지 여부도 이날에서야 알 수가 있다. 물론, 미리 해당 강사에게 오후반 수업을 해도 일정에 무리가 없는지 물어보는 배려를 해 주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따라서 뭘 배우고 싶을 때도, 투잡을 뛰면서 일정을 세울 때도 강의 배정표가 나오기 전에는 섣불리 정하지 못한다.

 또한 신규 등록 학생들 중에는 비자 발급이 늦어져서 개강날 개설되지 못하는 반도 있는데, 이 때에도 학생이 도착하고 다음 날 또는 며칠 후에 수업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도착하는 대로 강사에게 급히 연락해서 지금 당장 수업을 하라고 하기도 한다. 즉, 미개설 반을 담당한 강사는 언제 학생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개설 전까지 1주든 2주든 대기 상태로 학교에 출근해야 한다. 기관에서는 그것을 당연히 여기면서도 그 시간에 대한 보상은 생각하지 않는다. 강사로서는 대기 기간동안 출근한 것뿐 아니라 의지와 상관없이 그런 반을 배정받아서 며칠 수업을 못하고 그에 따른 시급을 못 받는 것 자체도 손해인데 말이다. 

  즉, 한국어 강사는 제도적으로는 시간 강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수업 외 시간까지도 기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실, 이 글을 통해 내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시간의 자유로움'이라는 달콤함 뒤에 '시간 엄수의 책임감'이 가려져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수업 시간 외에는 자유라는 점이 좋다는 생각만 하지 시간에 얼마나 구속되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한국어 강사 뿐 아니라 시간 강사들, 넓게는 모든 강사들에게 적용되는 것이기도 하고 또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서 새삼스럽지도 않게 느껴지겠지만 굳이 꺼내 놓는 이유는 너무 밝은 부분만 부각되는 것 같아서 그만큼 이면도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지각을 해서는 안 되는 직업

  직장인들은 출근 시간에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거나 폭설로 길이 막히면 가끔 지각을 하기도 하고 그런 예외 상황이라면 한두번쯤은 지각이 용납되기도 하지만 한국어 강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지각할 수 없다. 기관에서 허용이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수업 시간은 학생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에 버스나 자동차 안에서 발이 묶이면 세상에서 제일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진땀이 나고 대책을 고심하게 된다. 단 5분이라도 수업에 늦으면 한 학기 내내, 길게는 몇 학기 동안 마음의 짐으로 남는다. 그래서 아침잠이 많은 나는 평일에는 웬만하면 저녁 약속을 잡지 않고 어쩌다 술자리라도 생기면 주량대로 마시지도 못하고 일찍 일어나게 되는데 직장인 친구들은 '여기 내일 일 안 해도 되는 사람 없는데 뭘 그렇게 유난이냐'며 남의 속도 모르고 타박만 한다. 



  아프기 전에는 결강도 할 수 없다.
 
 따라서 결강도 쉬운 일은 아니다. 결강을 하게 되면 당연히 주변 강사들에게 대강을 맡기게 되는데 다들 같은 시간에 수업을 하다 보니 대강해 줄 강사는 오후반에서 구해야 하고 내가 맡은 급을 가르쳐 본 적이 없는 강사에게 수업을 맡기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부담스럽기 때문에 대강 강사를 구하기도 어렵다. 그나마 오후반이 없이 오전 강의만 있는 기관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대강 강사와 나 사이의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급 담당 강사와 전임에게 사유까지 보고해야 한다. 그러니 보고할 수 있을 만큼 당당한(?) 사유여야 하지 않겠는가. 

  친한 강사 중 한 분은 초등학생 자녀의 교장에게서 학부모회의에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고 여러 번 거절해도 먹히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대강을 신청했다가 있는 잔소리 없는 구박 다 받았다고 한다. 물론, 대강을 부탁하면 그만큼 급여에서 빠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익숙하지 않은 강사가 들어와서 수업을 진행하는 일은 학생들에게도 미안한 일이다. 사정이 이러니 웬만한 일로는 결강을 할 수 없다. 지금까지 본 대강 사유는 아픈 경우나 직계가족의 경조사 또는 자녀의 입원 등이었다.

  그런데 사실, 아픈 경우에는 미리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당일 새벽이나 아침이 되어서 기관에 연락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비상사태로 돌입한다. 수업을 몇 시간 남겨 놓지 않은 상태에서 대강을 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강사도 별로 없거니와 연락 시간이 조금만 늦으면 학교 근처에 사는 선생님들로 가능 대상이 좁혀지기 때문에 더더욱 구하기가 어렵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죄 지은 것 같은 기분으로 여러 사람에게 미안해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웬만큼 아파도 수업은 빠지지 않는데 가끔 정상적이지 않은 컨디션으로 학생들을 대하는 것과 결강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나은 선택인지 알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직장인들은 -물론 직장인들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지만- 월차 휴가도 있고 생리 휴가도 있어서 아플 때 또는 뭔가 일이 있거나 (드라마 같은 발상이기는 하지만) 어느 날 일하기가 너무 싫고 쉬고 싶을 때는 월급의 감소 없이 이런 휴가를 쓸 수도 있지만 한국어 강사는 생리 휴가는커녕 월차도 존재하지 않고 한 학기가 지속되는 10주 동안은 수업 시간에서 단 5분도 뺄 수 없다. 심지어 대학 강사처럼 보강을 전제로 휴강을 할 수도 없다.    

  좀 우스운 예이지만 하다못해 택배나 각종 전화 상담 또는 가전제품 A/S 예약을 할 때도 상대방이 시간을 맞춰 줄 수 없다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나는 9시부터 1시까지는 절대로 시간을 뺄 수 없고 상대방은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것은 강사로서 매우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나도 불만이 있다거나 불평하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수업 외의 시간이 자유로운 만큼 수업 시간에 매여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말에 혹하기 전에 그만큼의 구속이 있다는 것도 파악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구속에도 불구하고 쉬운 직업으로 여겨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또, 한국어 강사를 막연히 꿈꾸는 사람에게는 이런 조건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일이라면 그 때 선택하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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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음 국어사전>에 따르면 '근무'는 직장에 적을 두고 직무에 종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2009년 다른 직장인들이 유가환급금을 받을 때 나는 시간 강사는 근무성이 없는 직업이라는 이유로 유가환급금 수령 조건에 만족하지 못해서 받지 못했다. 즉, 시간 강사란 직장에 적을 두고 직무에 종사하는 직업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한국어 강사의 법적 지위는 근무성이 없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업무 내용이나 요구되는 의무는 근무성을 다소 갖고 있다. [본문으로]</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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