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새다리의 한국어 가르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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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어 강사다

한국어 강사는 (한국어와 관계 없어도) 모든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할까요?

간새다리 2022. 1. 16.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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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 안에서 학생들은 많은 질문을 한다.

'주어요', '보아요'는 축약이 되는데 '쉬어요'는 왜 축약이 안 돼요?
'듣다'는 '들어요'인데 '받다'는 왜 '받아요'예요?
'-에도'는 되는데 왜 '-은/는도'는 안 돼요?
Canada는 캐나다인데 왜 Australia는 호주예요?
한국 사람들은 식당에서 밥 먹을 때 왜 꼭 밥을 볶아 먹어요? 전통이에요?
한국의 띠의 동물은 언제, 어떻게 정해졌어요? 몇 년도가 무슨 띠인지 누가 정해요?

 

  수업 내용과 관계 있는 질문도 있고 관계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수준에 설명이 가능한가 내지는 학문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 아닌가 싶은 것도 있고 한국에 대한 것이지만 한국어에 대한 질문이 아닌 것도 있다. 그리고 이런 질문들에 모두 대답해 주려고 노력하는 강사들이 있다.

  물론 강사 본인이 답을 잘 알고 있고, 교실 상황에 알맞게-학습 수준, 질문자 외의 학생들의 관심, 교육 과정과 그 학급의 속도(시간 여유) 등등- 적절한 범위에서 대답해 줄 수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가끔 주변 강사들의 이야기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이야기를 들으면, 한국어 수업과 전혀 관계 없는 질문에 진땀을 뺐다거나 수업 시간을 다 보냈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학생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 주고 싶어하고, 답을 찾아 주고 싶어하는 마음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10명 안팎의 학생들이 있는 교실에서, 유난히 교과과정 또는 한국어 학습과 관계없이 어원이나 형태소 분석, 생활 방식이나 문화 양식의 유래에 관심이 많은 한두 명의 질문을 받아 주느라 나머지 학생들은 관심이 없거나 굳이 한국어 교실에서 들을 이유가 없는 이야기를 들으며 수업 시간을 보냈다면? 강사가 대답하기 어려워 진땀을 빼고 남은 수업 시간 동안 그 기억으로 찝찝함에 시달린다면? 그다지 바람직한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비단 그 질문에 관심없는 학생들 때문이 아니더라도[각주:1] 학생의 모든 질문에-정확히는 그 질문이 '한국'에 대한 것일 때- 다 대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다 대답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버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모든 것에 설명할 수 있는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우선, 한국어에 대한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자. 어떤 질문들은 설명 가능하지만 단지 현재 학생의 수준에서 설명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 한글을 배운 지 1주일 정도 된 학생이 '-아요/어요'를 처음 배우면서 왜 덥다가 더워요가 되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그런 것이다.[각주:2]

  또 어떤 질문들은 어학으로서의 한국어 수업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내용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사이시옷 현상에 대한 질문이 그렇다. 물론 6급 정도 되는 학생들한테는 궁금해한다면 이 두 단어가 합성될 때 왜 'ㅅ'이 첨가되었는지 설명해 줄 수는 있겠지만 사이시옷 현상 자체에 대해서는 설명도 어렵고 소화할 수 있는 학생도 별로 없을 것이다.[각주:3] 초급 학생이 질문을 하는 경우에는 설명 대신 '그냥'이나 '몰라도 된다'는 대답이 학습 동기에 더 도움이 될 때도 있다. 기껏 설명을 해 주고 나면 질린다는 표정으로 '왜 이렇게 복잡하냐'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어떤 질문은, 간단히 말하면, 설명할 수 없는 질문이다. 언어라는 게 항상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유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모어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으면서 외국어에 대해서는 이런 것에 논리적인 대답을 얻고 싶어한다. 학생이 이런 호기심을 갖는 건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누군가 꾸준히 연구를 하고 있는 주제라면 논문 등을 통해 가장 통용되는 가설을 찾을 수도 있을 거다. 그렇지만 이런 질문에 모두 대답해 주려는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질문에 대답을 못한다고 해서 자신이 한국어 강사로서 부족하다는 생각도 할 필요가 없다. 그 대답을 아는 것이 혹시 학생의 한국어 학습에 도움을 준다면 모르지만 대개는 크게 관계가 없지 않은가. 학생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는 건 모어나 한국어나 마찬가지라는 걸 알 필요가 있다.[각주:4]       

▶ 한국어 강사는 한국 백과 사전이 아니다.

  많은 한국인 한국어 강사들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학생들이 궁금해하는 한국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받아온 교육의-명시적이든 기저에 깔려 있는 의식이든- 영향인지 외국인을 대할 때 무의식적으로 자연인인 '나'에 앞서 '한국인'으로 정체화하거나 국위선양에 대한 의무감을 갖게 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한국에 대해 궁금해하는 건 다 알려 주고 대답해 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거기에 '학생들이 내가 한국에 대해 다 알 거라고 기대할 텐데'라는 마음까지 더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한국어 외의 질문들에-문화, 사회 등 전반에 걸친- 대해서도 모두 대답을 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한국어 강사가 한국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좋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언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게 한국어 강사가 백과 사전처럼 한국 문화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문화에 대한 학생들의 질문에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게 잘못된 것도 아니고 부끄러워하거나 자신의 자질에 대해 의심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어 강사의 전문분야는 한국어지 한국 문화 전반이 아니다. 

 

  처음 한국어 수업을 시작하면, 학생들의 호기심이 다 기특하게 느껴지고 모든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을 하려는 의무감도 생기기 마련이다. 앞서 말했듯이, 국어학적인 질문이거나 문화에 대한 질문이더라도 대답을 잘 알고 있고 학생의 수준에 맞게 대답할 수 있다면 굳이 회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개인 수업이 아니라면 질문을 한 학생만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해도 그 대화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건 곤란하다.

  가끔은 진행 중인 학습 내용과 관계 있는 질문이라도 질문자에게 쉬는 시간에 따로 얘기하자고 해야 할 때도 있다.[각주:5] 그러니 국어학적인 질문이나 문화에 대한 질문에 시간을 할애할 때는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교실에는 그 학생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어 강사들이 모든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 났으면 좋겠다. 특히 언론 등에서 '민간 외교관' 같은 말을 붙여 무의식적으로 갖게 되는 사명감에서 비롯되는 '한국에 대한 질문에 다 대답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부담감과 그로 인해 생기는 대답을 못했을 때의 좌절감에서 말이다. 

  나와 나의 수업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내가 설명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해 조금 편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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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것 때문만이라면 너무 고객중심주의의 서비스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본문으로]
  2. 각 기관에서 채택하는 교육 과정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아요/어요'를 학습할 때는 불규칙 용언을 암기식으로만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각각의 불규칙은 이후에 하나씩 배우게 된다. [본문으로]
  3. 사이시옷을 예로 들었지만 음운, 문법, 어휘 등 국어학적으로 더 깊은 내용일 때도 많다. [본문으로]
  4. 특히 성인 학습자 중에서는 모든 학습 요소에서 논리를 찾고, 이유를 찾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외국어를 배울 때는 자신의 모어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필연적인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본문으로]
  5. 학생의 배경 지식이 많아서 다른 학생들은 모르는 유사 문법과의 비교를 질문했을 때라든지 반대로 다른 학생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선행 학습 내용이 부족해서 질문을 한 경우 등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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