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새다리의 한국어 가르치는 이야기

경험으로 말하는 한국어 강사의 자질 본문

나는 한국어 강사다

경험으로 말하는 한국어 강사의 자질

간새다리 2021. 12. 9.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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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치해 뒀던 블로그를 좀 들여다 보고 있는 중이다. 비공개했던 글을 다시 공개로 돌리기도 하고 그러면서 누군가가 남겨 준 댓글을 다시 읽어 보기도 하는데, 방명록 글 중에 한국어 강사의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이 눈에 띄었다. 사실 예전에도 이걸 주제로 쓴 적이 있다. 그때는 야심차게도 시리즈로 쓸 생각으로 시작했다가 이어서 쓰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욕심은 내지 않고 게시물 하나로 끝내려고 한다.

 이 주제로 쓰려고 하면 마음 깊은 곳에서 내가 이걸 쓸 자격이 있냐는 질문이 들려 온다. 왠지 내가 이런 자질을 다 갖추고 있어야만 쓸 자격이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이번에도 잠시 망설였는데, 다른 분야를 생각해 보면 본인이 자질을 모두 갖추었는지와는 별개로 이야기를 하고 그게 나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다. 나도 내가 이걸 다 갖춰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 이걸 다 갖춰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못 갖춘 부분이 있으면 더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냥, 한국어 강사는 어떤 직업인지, 나에게 맞을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팁 정도로 생각해 주면 좋겠다.

  ▷ 언어 감각

 나는 한국어 강사의 자질로 언어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비단 한국어 강사 뿐 아니라 언어를 가르치는 사람은 언어 감각을 어느 정도 갖춰야 한다. 몇 개의 언어를 할 수 있냐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 이해와 사용에 얼마나 예민한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교실에서 한국어 표현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어휘와 표현들을 분석하고 정리하고 학습자의 수준에 맞게 전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각주:1] 이 과정에서 그리고 학생들과 마주할 때 언어 지식과 함께 언어 감각이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A와 B의 차이와 공통점을 발견하거나 다르게/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상황을 범주화하고 학습자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 전달하는 모든 과정에서 언어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더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어 강사가 되고 싶다면 평소 본인의 언어 생활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생활 속에서 표준어로 어문규정에 정확하게 맞는 말만 하는지가 아니라 그게 맞는지 맞지 않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각주:2] 평소에도 입력되는 언어에(읽고 듣는 모든 것) 예민하고 언어를 출력할 때(쓰고 말할 때) 표현과 단어 선택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지, 평소에 비문과 정문을 잘 구별하는지, 문장 구성 요소들의 관계나 문장의 구조를 잘 파악하는 편인지 상황이나 청자와의 관계에 따른 어휘와 말투의 선택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지 등등 자신의 언어 감각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생각해 보자. 평소에도 주변 지인들보다 이런 부분에 둔감하고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었다면 어학 강사가 되기 위해서는 익숙해지도록 많은 훈련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언어 감각과 관련해 덧붙이자면, 언어 생활의 반경이 넓은 것도 언어 감각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많은 종류의 텍스트를 접하고 있다면 그만큼 경험으로 쌓인 데이터가 많다는 의미이고 언어 지식과 언어 감각에 도움이 될 것이다.

  ▷ 다양성 인정하기(+문화적으로 올바른 태도)

  두 번째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다양성 인정이다. 2021년 현재에는 이문화에 대한 열린 마음은 한국어 강사가 아니더라도 새삼스러울 정도로 당연한 말이지만,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지역적으로 다른 문화'뿐만 아니라 소수자, 다른 종교, 다른 세대 등 내가 속하지 않은 모든 문화와 삶의 방식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내가 속한 문화가 더 우월하다는 생각[각주:3], 상대방을 계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한국의 문화는 이렇다'라고 설명하는 것과 '한국의 문화가 이러니 우수하다고 인정해라'나 '한국의 문화가 더 나으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다르다. 생각보다 많은 교실에서 -때로는 강사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이런 내용이 오가는 경우가 있고 불편함과 불쾌감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많다.[각주:4]

  소수자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채식인에게 '고기를 안 먹으면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없다'고 하거나 학습자의 성정체성을 계속 캐묻거나 바꾸려는 의도의 시도도 옳지 않다.

  또 학습자를 그가 속한 문화적 배경 등을 이유로 불쌍히 여기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에서 왔으니까 불쌍할 거야'라는 태도 말이다. 인간으로서의 측은지심이나 돕고 싶은 마음 또는 공감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수혜적인 태도로 대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베푸는 사람 너는 도움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태도는 학생도 느낄 수 있을 거다. 우리도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시혜적인 태도로 뭔가를 '베푸는 태도'를 보이는 것에는 반감을 느끼지 않는가.  

  그러나 동시에 옳은 것과의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의 문화를 인정하는 것과 보편적인 윤리/도덕에서 어긋나는 일을 그냥 넘기는 것은 다르다. 남성우월주의적인 문화 배경을 지닌 학생이 계속 성차별적인 발언과 행동을 하는 경우에 그대로 둘 수는 없다. 

   역사적 정치적으로 우리와 갈등을 갖고 있는 나라의 학생을 일부러 자극할 필요도 없지만 그런 내용의 언급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을 때는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소위 PC(politically correct)한 태도가 필요하다.[각주:5] 한국어 교실은 예상 대로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하게 강사-학생, 학생-학생의 문화 충돌이 일어난다. 그 사이에서 제대로 대처할 수 있으려면 강사 본인이 문화적인 PC함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각주:6]

 

  ▷ 눈높이 설명 능력과 인내심

  이것은 모든 과목의 교수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이며 당연히 한국어 강사에게도 요구되는 것이다. 모 교육 업체의 광고로도 유명해진 '눈높이' 교육이라는 말은 그 광고에서는 어른이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줘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한국어 교육에서는 한국어 모어(또는 고급) 화자가 한국어 학습자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설명의 내용과 설명을 위해 사용하는 어휘나 표현은 학습자가 알고 있는 한국어 지식의 범위 내에서 골라야 한다. 또한 목표 언어인 한국어로 수업을 하는 경우에는, 내용의 난이도와 관계없이 한국어로 뭔가를 듣고 있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인 학생들을 위해, 설명은 명료하고 단순해야 한다.

  여러 제약과 활용형뿐만 아니라 해당 표현이 갖고 있는 화용적인 의미를 단순하고 명료한 설명으로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또한 이 표현을 학습할 때 학생 입장에서 뭐가 제일 궁금하고 뭐가 제일 이해가 되지 않을까를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본인이 평소에도 잘 알고 있는 지식을 남에게 쉽고 간단하되 정확하게 잘 설명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학창 시절, 친구들이 선생님의 설명보다 내 설명이 쉽다고 했다든지, 주변의 연장자에게 컴퓨터나 모바일 기기 사용법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든지 말이다.

  이렇게 설명을 한 후에는 학습자가 이해하고 알맞게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학습자들은 형용사는 이 문법과 결합할 수 없다고 했는데도 그새 형용사로 예문을 만들기도 하고 그냥 기계적인 교체 연습일 뿐인데 한참 뜸들여야 입을 뗄 수 있기도 하다. 그 모든 시간과 상황을 기다려야 한다. 진도 걱정과 다른 학생들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학생이 직접 발화할 기회를 앗아가서도 안 된다. 내가 기다려서 학생이 직접 발화할 수 있거나 자가 수정을 할 수 있는 그 시간이 학습자가 학습 표현을 내재화 하는 시간이다.

  이밖에도 지나치게 사소해 다 언급할 수 없는, 인내심을 요구하는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당연하게도 학생들은 다 착하기만 한 건 아니다. 정말 못되게 굴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나를 시험하기도 하고 해맑은 마음으로 수업 진행을 방해하는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한다. 다른 모든 사회와 마찬가지로 한국어 교실에도 여러 군상의 인간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안에서 한국어 강사는 많은 걸 감내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약자다. 부당한 상황까지 다 참아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참는 것이 일상이 되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기타

  그 외에 필요한 자질을 꼽으라면 순발력과 균형 감각 정도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질문에 순발력 있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언어 감각과 철저한 수업 준비가 필수적이다.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임기응변을 발휘해 대답한 후 나중에 이불 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순간은 모면할 수 있었지만 다소 부정확한 설명을 한 것은 두고두고 남는다.

  또한 다양한 성향, 성격, 학습 목적, 이해 속도를 지닌 학생들 사이에서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것도 원활한 수업 운영을 돕는다. 또한 지나친 온정주의와 냉정함 사이의 균형 감각도 중요하다. 다른 언어의 어학 강사들에 비해 한국어 강사들은 학생들에게 뭐든 다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학생에게 친절을 베푸는 건 미덕이 될 수도 있지만 뭐든 지나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른 언어와 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도 학생들과 유대감을 쌓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중에 추가하고 싶은 것이 더 생길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이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한국어 강사의 자질이다. 그동안 주변 강사들을 보면서 또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생각한 걸 정리해 봤다.

  앞부분에서도 말했지만 이런 자질을 갖추지 않으면 한국어 강사가 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국어 강사가 되고 싶은데, 자신이 어떤 부분을 더 채워야 하는지 어떤 노력을 더 해야 하는지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으니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 채울지 방법을 찾아 보길 바란다.

 

 

  1. 물론 선구자들이 훌륭한 지식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출판한 이론서들이 있지만 그것들을 제대로 소화하려면 직접 연구해야만 한다. [본문으로]
  2. 한국어 강사는 표준어로만 말하고, 어문규정에 맞는 문장만 말하며 비속어는 사용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본문으로]
  3. 사족이지만 내가 학생보다 위에 존재한다는 권위적인 시선과 태도 자체를 버려야 한다. [본문으로]
  4. 강사가 지나치게 한국을 비난하는 것도 학습자들은 불편해한다. [본문으로]
  5. PC충이라는 말로 본질을 흐리는 사람들 때문에 이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올바름'을 유지하는 데에 왜 거부감을 느끼는가? [본문으로]
  6. 추천 도서: <선량한 차별주의자>,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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