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새다리의 한국어 가르치는 이야기

비대면 시대, 당신 수업의 안부를 묻습니다. 본문

나는 한국어 강사다

비대면 시대, 당신 수업의 안부를 묻습니다.

간새다리 2021. 4. 25. 13:04
320x100

 수업의 안부를 묻는 질문을 제목으로 채택했지만 사실 수업의 안부보다는 강사인 당신의 수업권과(교권) 초상권 등 인격권이 안녕한지를 묻고 싶습니다.

잘 보호 받고, 보호하고 있나요?

 

수업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온라인 세상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죠. 

  여러 핫플레이스에서 브이로그를 찍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길을 걸으며 자신이 보는 모든 것을 찍는 유튜버를 보면 어떤 기분인가요? 누군지 알 수 없는 유튜버의 영상에 잠깐이라도 찍혀서 인터넷 상에 돌아다니는 상상을 해 보셨나요? 아무도 그 장면 속의 나를 주목하지 않더라도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저의 모습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는 사람은 저의 초상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 사람이 영상을 올릴 때 모자이크 처리를 해 주면 괜찮은 건가 싶기도 하지만 때로는 원본 파일이 누군가의 컴퓨터 안에 들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싫습니다. 

 

  이런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제가 비대면 시대 수업에 대해 느끼는 불편감을 더 잘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대면 시대 수업 '관리'에 대해 느끼는 불편감이라고 해야겠군요.

  지난 1년여 동안 여러 기관에서 일하는 지인들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안부를 묻고 각자 온라인 수업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면서 나온 얘기들은 수업권과 초상권에 대한 의문을 갖게 했고 곱씹을수록 불편감이 커지네요. 저만 예민한 걸까요?   

 

  일부 기관에서는 실시간으로 진행된 화상 수업을 녹화해 일정 기간 동안 학생들에게 제공하기도 합니다. 재택으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인터넷 접속 상태나 사용 기계의 성능에 갑자기 문제가 발생하는 등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경우 가능한 시간에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는 거죠. 대학들도 이런 것을 고려해 실시간 수업의 녹화본 업로드를 의무로 정해 놓은 곳도 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학생들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죠.

그런데 이 녹화 파일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나요?

 

  어떤 기관은 녹화할 때 학생의 모습이 들어가지 않도록 설정할 것을 규정화하기도 합니다. 녹화 파일을 보는 학생들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다른 학생들의 인격권을 지켜 주는 것이죠. 또 어떤 기관은 이 녹화 파일은 학생 공개 기간이 끝나면 반드시 삭제하도록 안내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강사의 개인 컴퓨터에도 저장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복제 또는 유출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겠다는 거죠. 그게 강사의 개인 컴퓨터라 하더라도.

 

  반면에 어떤 기관은 녹화 파일을 기관의 저장 공간에 저장하도록 요구한다고 합니다. 보관 기간도, 보관의 목적도 강사들에게는 설명해 주지 않고요. 물론, 강사들도 기관에서 이걸 복제해서 다른 이에게 공유하거나 표정이 웃긴 장면을 캡처해서 SNS에 올려 창피를 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선 왜 그게 저장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대면 수업과 무슨 차이가 있는 거죠? 대면 수업은 어떤 형태로도 저장하지 않고 그 시공간을 지나가면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지게 두지 않나요? 왜 비대면 수업은 기관의 디지털 재산이 되어야 하죠? 이 부분에서 대면 수업과 비대면 수업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기간이 있을까요? 게다가 디지털 파일이 얼마나 쉽고 빠르게 복제되고 퍼질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 또 컴퓨터 등의 기기를 버릴 때 사람들이 의외로 파일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내가 진행한 수업의 파일들이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것은 불쾌한 일입니다. 제가 학생이라면? 더욱 불쾌하고요.

 

 

  녹화 파일을 저장하는 모 기관의 담당자는 '(예를 들어) 온라인 수업 홍보 영상이라도 찍어야 한다면 누구 수업이 나은지 찾아 봐야 할 수도 있고'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이게 말이 될까요? 대면 수업 홍보 영상이 필요해서 적합한 강사를 찾을 때도 수업하는 교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보고 오나요? 수업이 보고 싶으면 정식으로 요청해 참관을 하거나 시강을 부탁하지 않나요? 왜 비대면 수업은 달라야 하죠? 무작위로 모든 강사의 수업을 아무거나 열람하겠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가 있나요?

 

  또 다른 기관에서는 문제를 제기한 사람에게 수업 자료를 보관하는 것이니 문제가 없다고 얘기해 더 이상 항의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수업 녹화본이 왜 수업 자료죠? 그 자료로 무엇을 할 건가요? 그 자료로 뭔가를 하려면 학생과 강사에게 목적을 명확히 명시한 자료 제공 동의서를 받아야 하지 않나요? 논문도 그렇듯이 말이죠. 방송국에서도 방청객에게 촬영 동의, 영상 송출과 보관 및 이용에 대해 동의서를 받습니다.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해도 수업의 녹화본이 과연 누구의 소유인가의 질문이 남죠. 녹화 파일을 학생이 가지고 있는 것도, 강사가 가지고 있는 것도 문제라면 기관이 가지고 있는 것도 분명 문제입니다.

 

  실제로 모 기관에서는 소위 '윗분'들이 강사에게 고지 없이 녹화 파일을 열람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강사들이 어떻게 수업을 하는지 알고 싶었던 '윗분'들이 무작위로 수업을 본 거죠. 일정 기간 학생에게 공개하기 위해 녹화 파일을 올려 놓은 강사들은 그걸 윗분들이 열람했을 거라는 건 꿈에도 몰랐고요. 관리자면 그렇게 봐도 되는 건가요? 방송국 관리자들이 편집 전 파일을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죠. 대중을 대상으로 '송출'하기 위해 찍어 놓은 영상을 보는 것과 우리 반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진행한 수업의, 결석한 우리반 학생을 위해서만 녹화한 파일을 사전 양해 없이 보는 것이 같을까요?

  그 영상 속 누구한테도 *월 *일 수업을 보겠다고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보는 것이 당연한가요? 우리는 사전 고지 없이 교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행위를 당연하다고 보지도 않지만 강사의 교권 침해, 학생의 학습권 침해라고 보지 않나요? 이 경우는 강사의 교권과 초상권 학생의 초상권 침해가 되겠네요. 학생들은 수업이 녹화되고 있는 걸 이미 알고 있지 않냐고요? 녹화돼서 며칠간 같은 반 친구에게 공개된다는 것만 알고 있죠.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그 파일을 열어 볼 거라는 건 알지 못합니다. 

 

  저는 위에 열거한 에피소드 하나씩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물론 그 에피소드 하나하나도 문제입니다. 그러나 '한 번 보는 게 무슨 문제야. 정말 봐야 할 필요가 있을 때도 있잖아' 또는 '학생들이 그것까지 신경 쓰겠어'라고 생각할 당신을 위해 말하자면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영상을 통해 보이는 여러 기관들의 태도입니다. 교권, 교사와 학생의 초상권 등 수업 구성원의 인격권에 대한 무시 또는 (디지털) 영상 자료의 권리에 대한 몰이해 말이죠.

 

  대면 수업일 때는 함부로 수업을 관찰하면 안 된다는 원칙은 지키면서 왜 비대면 수업을 '일정 기간 학생 공개 목적'으로 녹화한 파일은 함부로 열람해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영상 속 인물들의 동의를 얻지 않고 영상 파일을 보관하고 열람하는 것이 정말 옳다고 생각하는지, 학생이라는 존재는 초상권 제공 동의 없이 수업 활동과 얼굴이 누군가에게 열람되어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파일 열람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면 왜 열람 전에 강사들과 학생들에게 보겠다고 얘기하지 않았는지.

 

  물론 강사인 우리들도 생각해 봐야겠죠. 나의 수업권과 인격권은 이 비대면 수업의 시대에 정당하게 지켜지고 있는지, 나는 학생들의 초상권을 잘 지키고 있는지 말이죠.

 

다시 한번 묻습니다. 비대면 수업의 시대, 당신의 수업은 안전히 지켜지고 있습니까?

 

** 위의 얘기들은 제가 여러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정리해 묶어서 써 놓은 것입니다. 따라서 특정 기관만의 이야기도 아니고 특정 인물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러나 허구는 아닙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 글을 다른 분들에게 알리고 싶다면 간단한 내용과 함께 블로그 링크를 걸어 주세요.
간혹 제 글 전문을 복사해 옮기는 분들이 있는데 그러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이 마음에 드셨거나 공감하신다면 아래 추천 버튼 꾸~욱 눌러 주세요.
그리고 저와 이 곳을 들르시는 많은 동료 강사 여러분과 한국어 강사가 되길 바라는 많은 분들을 위해 여러분의 의견도 댓글로 남겨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제 제한된 경험만으로는 너무 부족해서요.^^


 

 

 

320x10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