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새다리의 한국어 가르치는 이야기

한국어 강사가 갖춰야 할 것들 1- 국어 지식과 외국어로서의 한국어에 대한 접근 본문

나는 한국어 강사다

한국어 강사가 갖춰야 할 것들 1- 국어 지식과 외국어로서의 한국어에 대한 접근

간새다리 2021. 12. 2. 20:57
320x100

*이 글은 2009년 11월 29일에 포스팅했던 글입니다. 너무 주관적이기도 하고 이니셜을 이용했지만 주변인의 이야기가 들어가서 비공개로 돌렸던 글을 조금 수정해서 다시 포스팅합니다. 연결된 글을 또 쓸 것 같기도 하고..해서요. 글 속 인물들은 이제 다른 길을 걷고 있네요.^^

 

  첫 번째 주제치고는 너무 식상한가?
  그렇지만 이 식상함은 첫 번째 주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것이고 또 이 자질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글을 쓰는 입장에서 나의 부족한 국어 실력(특히 띄어쓰기)이 드러나는 자리에서 다루기에 부담스러운 주제다.

  아마 사람들은 반문할 것이다. 한국어 강사로서는 '원어민 강사'인 한국인인데 국어 지식을 굳이 갖추고 말고 할 것이 있냐고.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지 않냐고.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한국어 원어민 강사는 한국어 모어 화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초보 강사 시절에 일본인 친구들과 택시를 탄 적이 있었다. 이것 저것 잡담 끝에 그 친구들이 '-이/가 좋다'와 '-을/를 좋아하다'가 다른 의미인지 다르다면 뭐가 다른지 궁금해했다. 한참 한국어 연습을 할 때라서 어설프지만 한국말로 띄엄띄엄 질문을 했다. 그러자 택시  기사가 '그게 뭐 다른가. 똑같지."라며 설명하려는 내 말을 막아섰다.

  같이 일하는 강사 중에 학부에서는 국어국문학, 대학원에서는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전공한 강사 A가 있다. 두어 번쯤 그가 불규칙 수업 준비를 하면서 스스로도 불규칙의 형태를 이해하지 못해 고민하는 것을 봤다. 'ㄹ 탈락'에서  'ㄹ'받침이 탈락하는 과정 같은 것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어 화자로서도 불규칙 용언 사용에 어려움을 겪을까? 같이 대화를 할 때 눈에 띄는 고정된 오류를 범한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으니 그렇지는 않을 거다. 

  위에서 예로 든 두 사람 모두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고 있는 한국 사람이다. 그렇지만 (택시 기사는 강사는 아니지만) 저 정도의 지식으로 한국어를 가르친다면 계속 벽에 부딪히거나 학생에게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게 되고 학습자의 오류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특히, A의 경우는 경력이 벌써 1~2년이 됐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고 동시에 학부와 대학원에서 모두 한국어 관련 전공을 했음을 고려할 때 신기한 일이다.  본인의 성격이나 직업에 대한 자세와도 관계가 있을 테고 강사로서의 자질 면에서도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국어 교육 기관이 강사들에게 국어 교육까지 시킬 수는 없으므로 강사가 되기 전에 국어 실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강사가 된 후에도 계속해서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 1급이라면 어차피 가르치는 내용이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고 까다로운 유사 표현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아서 다소 부족한 지식으로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언제까지나 1급만 가르칠 수도 없고 1급 학생들에게서도 꽤 날카로운 질문이 나오기도 한다.
  게다가 언어 습관과 '규정에 맞는 말'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도 커서 매일 사용하고 주변에서도 자주 듣는 표현이지만 어느 순간 이게 '정문/맞는 말'인지 자신이 없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나는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 학생이 사용했을 때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다른 사람들은 다 사용하고 있으며 문법적, 화용적으로도 오류가 없는 표현도 있다.
  따라서 평생 사용한 말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꾸준히 의심하고 공부하고 밝혀내야 하는 것이 이 직업이다.

  선배 강사인 B가 있다. 경력이 꽤 되어 초중고급을 두루 가르쳐 본 그녀는 같은 급을 몇 학기고 반복해서 할 때도 매번 해당 문법에 대해 공부하고 주변 사람에게 의견을 묻고 자신이 회의를 진행하지 않을 때도 사전에 꼼꼼히 내용을 확인하고 의문 사항을 메모해서 토론 거리를 던진다. 신입 강사의 의견이라도 귀담아 듣고 곱씹는다. 사전과 문법책을 봐도 해결되지 않는 것은 국립국어원의 '온라인 가나다'라는 게시판에 문의하고 답변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래서 B와 회의를 할 때는 회의 시간은 길어질지언정 지루하거나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B선생님의 궁금증을 풀어줄 만큼의 국어지식을 가진 '온라인 가나다' 게시판의 답변자나, KBS 우리말 겨루기에 나와 1등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국어 강사가 될 기본 조건을 충분히 갖췄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도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한국어 문법과 단어에 대한 외국어로서의 접근법이다.

  평생 사용하면서 당연하게 여겨 온 것들이 학습자들에게는 모두 질문거리이다. 너무 당연해서 의문도 품지 않았던 것들 말이다. 그런데 그 것들은 국어학 지식을 갖추고도 설명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학습자의 수준에 따라 어디까지 알려 줘야 할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 때로는 문법책이나 온라인 가나다 게시판을 아무리 찾아 봐도 해답을 얻을 수 없는 것도 있다. 이 경우에는 의미가 문제가 아니라 용법이 문제다. 한국인들의 언어 습관으로 굳어져서 문법책에는 없지만 사용 상황에 제약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 학습자가 아무리 의미 이해를 잘 해도, 한국인이라면 너무 당연해서 만들지 않았을 오류문을 만들어서 당황하게 한다. 따라서 이런 부분까지 생각해서 의미와 형태와 용법을 전달해야 하는 것이 한국어 강사다.
  그래서인지 다른 접근법을 가질 수 있다는 면에서는 국어학적인 사고 방식과 접근법을 가진 국어국문학 전공자에 비해서 타 전공자가 더 자유로울 수도 있다. 한국어에 대해서는 조금 더 말랑말랑하게 생각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어 강사가 되고 싶다면 자신이 한국어를 뒤집어 보고 파헤쳐 보고 새로운 단어나 숨겨진 문법의 의미를 알아 가는 것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봐라. 만일, 평생 사용한 말이지만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재미있고 알수록 더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일을 하는 것이 즐거울 것이다. 더불어 뭐든지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밑거름을 가졌다고도 할 수 있다. 자신의 언어 생활 범위를 넓혀서 계속 관찰하고 자극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320x10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