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새다리의 한국어 가르치는 이야기
한국어 강사로서 한국어 문법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해... 본문
한국어 강사 커뮤니티에 자주 들어가 보고 글도 더 많이 읽고 하는 편이다. 그런 커뮤니티의 경우 강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들어와서 그런지 과거에 내가 수업 준비를 하다가 가졌던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많고 아직 외국어로서 한국어에 접근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구나...싶은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오지랖병이 도져서 조언해 주고 알려 주고 싶은 게 자꾸 생긴다.
특히, 특정 문법 교수법이나 어휘 설명 등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댓글들을 보면 해 주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대신 여기에다가 쓰려고 한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문법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댓글을 보면 의외로 한국어 강사가 되고 싶어하거나 막 시작한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어떻게 한국어 문법에 접근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자격증 시험을 위해 국어문법론을 공부하면서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임이 분명할 때도 질문하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문법에 대한 접근보다는 국어 문법에 대한 접근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다. 모어 화자로서 국어 문법과 어휘의 의미, 기능을 정확히 알고 출발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이전에도 강조했듯이, 국어 교사라고 해서, 국문학 박사라고 해서 '당연히'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강사로서도 자질이 충분한 것은 아니다. 나는 한국어 강사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한국어를 외국어로 생각하고 접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문과 교수님들은 다르게 생각하시겠지만.) 언젠가도 얘기했지만 국립국어원 사이트에 질문을 남기면 '국어'로서의 대답을 해 주는데 외국인에게 가르치려는 내가 알고자 하는 부분은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사실 그런 커뮤니티들에 오는 사람들은 국어 문법서나 사전은 이미 기본적으로 보고 질문을 했을 거고, 관련 국문학 논문 등은 노력하면 찾아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의식하고 있든 못하고 있든 얻고자 하는 대답은 국문학적인 대답이 아니라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문법의 시각에서 나와야 하는 대답이다. 즉, 문법서가 아니라 현직 강사들의 노하우 안에 있는 대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현직 강사만이 해 줄 수 있는 대답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현재 공부 중인 사람들이라도 조금만 접근법을 바꾸면 충분히 찾아낼 수 있는 대답이다.
다들 외국어를 배워 봤겠지만, 외국어를 어문학이 아니라 '말'로서 배우는 학습자가 진짜 원하는 것, 필요한 건 '그래서, 그건 대체 어떤 상황에서 쓸 수 있는/없는 건데?' '그때 배운 이거랑 뭐가 다른데?'이다. 실제로 가르쳐 보면, 학습자가 언어학이나 한국어학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깊이 있는 문법 지식은 오히려 부담스러워하는 경우도 많다. 강사로서 가장 어려운 것이 아주 유사한 두 문법/어휘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는 건데 그 차이라는 게 1모어 화자라면 본능적으로 알지만 딱 잘라 설명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학습자가 원하는 건 문법 지식보다는 바로 그 모어 화자들이 가진 '본능'이 아닐까 싶다. 2
이렇게 생각한다면 강사로서 내가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은-본능을 전수해 줄 수는 없으므로- 문법의 의미와 함께,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떤 뉘앙스로, 어떤 표현들과 함께 사용해야 하는가이다. 즉, 국어학 쪽 논문을 찾아보고 연구하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실제 사용 방법과 화용적인 기능에 대해 더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어떤 문법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우선 자신의 말로 예문을 많이 만들어 봐라. 정문 뿐 아니라 비문도 만들면서 그것은 왜 비문인가, 왜 이럴 때는 이 문법을 사용하지 않는가 하는 것을 국어학적 지식과 모어 화자로서의 직관을 사용해 '생각'을 해야 한다. 물론 나 한 사람의 예문에만 의지하는 것은 좀 위험할 수도 있다. 나의 언어 사용이 대한민국 표준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까. 좋은 방법은 말뭉치 데이터를 잔뜩 모으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쉽지도 않고 효율도 높지 않으므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문법서나 한국어 교재에서 해당 문법을 가르칠 때 나오는 예문들도 참고하는 것이 좋다. 특히 비슷한 두 문법의 차이점을 고민할 때는 두 문법의 예문을 모두 보면서 한 번 문법을 바꿔 넣어 봐라. 그러면서 언제는 바꿔 쓸 수 있는지 언제는 바꿔 쓸 수 없는지를 찾고 그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이때 '생각'이라는 것은 모어 화자의 모어 문법론에 의한 생각만이 아니라 학생의 한국어로 학생의 수준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즉, 언어학적인 전문 용어가 아니라 해당 문법 사용의 문법/형태(식)적인 제약과 화용/의미/상황적인 제약을 꼽아 보라는 것이다. 이 제약을 생각할 때 학생의 수준에서 수업 시간에 나올 수 있는 질문과 내 설명을 듣고도 학생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오류문을 예측해 보자. 내 설명의 틈을 찾아내야 한다.
예를 들어 이유의 '아/어서'를 가르칠 때 '어제 머리가 아팠어요. 그래서 학교에 안 왔어요'라는 문장을 '-아/어서'로 한 문장으로 만들라고 하면 많은 학생들은 '머리가 아팠어서'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설명)도 준비해야 한다. 이 때도 그냥 '과거는 안 된다'라고 설명하면 학생 중에는 '과거의 사건' 자체에 '-아/어서'를 쓸 수 없다고 이해하는 학생도 있어서 강사가 '어제 머리가 아파서 학교에 안 왔어요'라는 예문을 제시하면 혼란스러워 할 수도 있다.
'-느라고'를 가르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단순히 부정적인 결과를 얻는 인과관계라고만 설명하면 학생들은 '밤에 늦게 자느라고 아침에 늦게 일어났어요'라는 문장도 만들 것이다. 이런 오류문을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A와 B를 동시에 할 수 없는 상황에서 A를 선택했기 때문에 B를 못하게 되는 것'임을 보여 줄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동시에 느라고 뒤에는 못하게 되는 행동 'B'가 올 수도 있지만 시간이 없다, 바쁘다 등등의 표현이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줘야 하고.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실에서 강사의 설명이 얼마나 명확하냐 하는 것은 얼마나 국문학적으로 정확한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얼마나 선을 잘 그어 주냐에 달려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사가 그 문법에 대해 확실히 안다는 것은, 국문학적 지식과 함께 그 문법이 학생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예상되는 오류와 질문이 무엇일지, 거기에 대해 어떤 예방 장치 또는 사후 장치를 준비해야 하는지까지 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나서는 이 문법에 대한 이 많은 내용을 현 학습 단계에서 다 쏟아 부을지 아닐지를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직 조사라는 품사에 대한 개념도 없는, 한글을 겨우 뗀 학습자에게 '-은/는'이 '보조사'인데 주격 조사 자리에 많이 쓰인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이/가'와 구분하는 연습을 시키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거다. 그것보다는 일단 주격 조사에 '-은/는'과 '-이/가'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수업 효율이 높다. 또 둘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도 기초반 학습자에게는 모두 다 설명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 해당 문법에 대해 확실히 알고 현 단계에서 제시할 내용을 강사 스스로 명확히 해 두면, 위에서 준비한 예상 질문 외의 질문을 받았을 때도 내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에서 설명을 하면 된다.
또한, 그 수업 시간에 소화할 내용을 정했다면 그 중 어떤 것을 먼저 설명하고 어떤 것을 나중에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모든 설명과 제약 제시 단계에서 다 설명할지 일부는 이후 어떤 단계가 끝나고 설명할지도 결정해야 한다.
어떤 문법을 고민할 때 의미가 아니라 화용적인 쓰임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면 연습과 활동의 방향도 명확해진다. 또한 비슷한 의미를 지녔으나 미묘한 의미 차이가 있고 쓰임도 다른 기 학습 혹은 곧 학습될 문법과 구분되는 지점을 만들기 위한 연습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으)ㄹ래요'는 실제로 행해야 하는 어떤 옵션들이 있을 때 선택하는 상황에서 많이 쓰이며 그렇게 가르쳤을 때 다른 비슷한 문법과 구분이 용이한데 이것을 염두에 두면 메뉴를 두고(식당, 커피숍, 놀이공원의 놀이기구, 멀티 플렉스 상영관에서 영화 고르기 등) 고르는 활동을 만들 수 있다.
특히 비슷한 두 문법/어휘의 차이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는 -그 문법 항목이 중고급 항목일수록- '이미지'를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 문법/표현/어휘를 들었을 때 내가 떠올리는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이미지를 애매하고 두루뭉수리하지 않게 학생에게 전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해 봐라. 왜냐하면, 중고급으로 갈수록 의미가 같은 복수의 문법과 표현/어휘가 나오는 빈도가 높아서 비교 설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차이점이 상황적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당신이 어떤 상황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 그림을 묘사할 수 있는 방법만 찾아내면 된다.
또한, 계속해서 강조했듯, 국어 문법과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문법이 다르므로 국어 문법에서의 정교함과 정확성을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문법에서 구현하려고 하면 안 된다. 국어에서는 '음운 탈락'이지만 외국어로서의 한국어에서는 '불규칙 용언'이다. '-은/는'은 보조사이지만 대부분 교재의 초급 1과에 나오는 자기 소개에서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문법으로 제시되는 '-은/는 -예요/이에요'에서는 '주격 조사'로 설명하는 것이 (경험 상)가장 좋은 방법이다. 즉, 교수 내용을 결정할 때 국어 문법론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가르쳐야 하는 학습자는 외국인이며, 지금 학습자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가 더 중요하다. 국어 문법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라는 특징을 무시하지 말라는 거다.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경계는 '마음 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경계를 알아내기 위해서 '외국어 교수 학습의 원리'라든지 '외국어 문법 교육론'이나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문법론' 같은 공부를 해야 한다. 물론 국어 문법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해서는 안 되고.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모어 화자로서의 자신의 직관을 믿으라는 거다. 모두의 직관이 맞지도 않고 당신의 직관이 항상 옳지도 않다. 그렇지만 늘 서적에 기대려고만 하지 말고 모어 화자로서 당신의 직관이 뭐라고 말하는지 들어야 한다. 사실 냉정하게 말하면 강사의 직관이 믿을 수 있는 것이려면 강사 자신이 언어 감각, 모어 화자로서의 언어 감각이 뛰어 나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표현이 있다. 어떤 일이든지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는 표현이지만 특히 요즘에는 한국어 가르치는 일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으로 언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해당 언어의 사용에 매우 민감하고 날카로운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일단 이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자신이 국어 사용에 자신 있는지, 대한민국 5천만 명의 평균 언어(국어) 능력 이상은 되는지 평소에 언어를 사용하면서 단어의 선택과 문장의 구성에 관심이 많았고 예민했는지 생각해 봐라. 그런 쪽에 자신이 없다면 애초에 시작을 안 하는 게 좋다. 그리고 자신이 있다면, 자신의 직관을 믿어라. 앞서 말했듯이 개인의 직관이 항상 맞을 수 없고 그것은 언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직관을 믿되 자만하지 말고 자신이 생각한 결과를 동료와 나눠야 하며 그래서 교안 회의라든지 동료와 상의하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거다.
긴 글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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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제한된 경험만으로는 너무 부족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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