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새다리의 한국어 가르치는 이야기
첫 발을 내딛은 초보 한국어 강사에게 본문
전에 맡았던 한 특별 프로그램의 조교로 일했던 친구가 얼마 전에 한국어 강사로 채용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조교일을 하면서 논문 쓰느라 고생했는데 요즘 그렇게 어렵다는 한국어 강사 취업 전선에서는 많이 마음 고생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게다가 규모도 크고 안정적인 어학당에 취직이 된 것도 잘 됐다 싶었고.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 한국어 강사로 첫 발을 내딛는 후배들을 보면 마음 놓고 기분 좋게 축하해 주기가 힘들다. 단지 초반에 빡세게 굴리는 한국어 교육계의 신입 강사 길들이기 때문은 아니다. 괜히 기선 제압을 하거나 위계질서 운운하며 기 죽이는 관행은 여전히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이유는, 과연 이 길이 좋은 직업인가 하는 회의가 들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누군가가 '한국어 가르치는 일이 좋으세요?'라고 물으면 망설이지 않고 좋다고 대답한다. 사람들에게 '말'을 가르친다는 것은 내 적성에 너무 잘 맞는 일이고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어서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꺼리는 내가 10명, 많게는 스무 명씩 앉아 있는 강의실에서 수많은 눈동자들이 1시간씩 내 위로 꽂혀도 아무렇지 않은 거나 수업을 마치고 나왔을 때 엔돌핀이 마구 넘치는 것을 보면 천직이구나 싶기도 하다. 인터넷 교육 프로그램이나 교재를 만들자며 누가 취직 자리를 제안해 와도 '그럼 교실 수업은 끝인가?'라는 생각이 들면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교실에 들어가 학생들과 눈빛을 교환하며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좋다. 그리고 이 일을 하고 있는 많은 사람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적성에라도 맞지 않으면, 그런 구석이라도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대학원에 들어가겠다고 생각했을 때 먼저 이 길을 걷는 선배가 해 준 '돈은 포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하는 직업이야'라는 말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이 한국어 강사의 슬픈 현실이다.
그런 여자/남자들이 좀 급여가 적어도, 비정규직으로 불안정해도 무급이나마 방학이 있고, 출퇴근 시간이 엄격하지 않고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버틸 수 있는 그런 직업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현실은 어쩌면 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10여년 후 논문을 막 끝내고 국내 유수의 한국어 교육기관에 채용된 후배를 보고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고 느낄 그 현실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강사로 뛰어든, 뛰어들겠다는 당신들에게 몇 년 더 살았다고 몇 년 더 일했다고 해 주고 싶은 얘기들이 있다.
첫째, 수업 끝났다고 휑하니 퇴근해 버리지 말고 수업 준비도, 숙제 검사도 가능하면 강사실에서 해라. 수업 준비하면서 모르는 게 있으면 선배 강사들이나 동료 강사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숙제 피드백을 하면서 아리송한 게 있으면 그 사람들과 나눠라. 한국 사람이니까 학생들에게 가르쳐 줄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겠지만 자신의 언어 습관을 100% 믿을 수는 없다. 또 수업 준비를 하면서 예문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회의 시간에는 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발견을 할 수도 있고, 선배들은 다 알기 때문에 회의 때 언급하지 않았지만 당신만 모르는 제약이라든지 사용 조건 등에 대해 들을 수도 있다. 물론, 처음에는 다소 어이 없는 질문을 하다가 핀잔도 받겠지만 핀잔 받지 않고 질문하는 방법이나 어떤 질문이 '유의미'한 질문인지.. 같은 것은 본인이 알아서 터득하도록.
둘째, 선배들의 노하우를 배워라. 특히, 국문과 졸업하고 국문과 대학원이나 한국어교육 전공으로 대학원 졸업한 당신, 개인 수업이나 기타 봉사활동 등으로 '잔뼈'가 굵었다고 생각하는 당신, 당신들도 해당사항 있음...이다. 1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앉아서 '가르쳐 주세요'라고 말하면 선배들이 매뉴얼 북처럼 척척 1번, 2번 달아서 전달해 줄 거라고 기대하지는 말기 바란다. 일단은 그렇게 가르쳐 주려고 마음 먹은 선배가 있다손 치더라도 컴퓨터 폴더에서 파일이 하나씩 나오듯 하나씩 척척 나오지도 않지만 어떻게 쌓은 노하우인데 세상에 어떤 사람이 서너 살짜리 어린애 밥 먹여 주듯이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어 주겠는가. 언젠가 특별 프로그램을 하면서 임시로 투입된 대학원생들을 신입 교육 시키며 수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물어볼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라니까, 교재와 교안을 들고 와서 마치 내가 수업 시간에 하는 것들을 시나리오처럼 펼쳐서 알려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해당 활동을 하면서 수업 중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경우에 따른 대처법까지도. 솔직히 그건 그 상대가 그 동안 해 온 노력과 자신이 들어갈 수업에 대한 예의도 없는 거고 게으른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가진 노하우는 몇 년 동안 수십 명, 수백 명의 학생의 발화에 귀 기울이고 밤 새워가며 피드백하고 같은 수업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도 그 때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수업 준비를 하면서 쌓인 내공이다. 그걸 복사하려고 생각하지는 말되, 그들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라는 거다.
셋째, 자신만의 교안을 만들어라. 아마 웬만큼 체계를 갖춘 교육 기관에 취직을 했다면 기관 내에서 사용하는 교안이 있을 거다. 그렇지만 교안은 가이드 라인일 뿐이다. 해당 문법과 표현을 어느 범위에서 가르칠 것인지 주의 사항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적절한 예문을 보여 주거나 활동이나 과제의 학습 목표가 뭔지 명시되어 있고 그것을 진행하는 방법을 설명해 놓은 안내서다. 영화나 드라마로 치자면 시놉시스 정도이지 시나리오가 아니다. 각자의 시나리오는 각자 작성하는 거다. 어떻게 도입할지 다음 단계로 어떻게 넘어갈지 초급 학생들에게 활동과 과제를 어떻게 설명할지는 본인이 생각해 내서 수업을 하는 것이고 그게 바로 수업 준비의 한 부분이다.
거창한 교안을 만들 필요는 없다. 이미 가지고 있는 각 기관의 교안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수업 운영 방식과 예문들 설명할 때 사용할 교사말 등을 준비하고 시뮬레이션을 해 봐라. 물론 문법 자체에 대해 연구하고 문법과 단어들을 학생들이 배운 한국어의 범위에서 어떻게 설명할지 연구하는 것은 기본이다.
넷째, 학생은 '애'가 아니다. 당신이 초보 강사라면 대부분 1,2급 수업부터 시작하게 될 텐데 당신 앞에 있는 학생들은 비록 한국어를 못해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생존에 필요한 1차원적인 표현밖에 못하지만 '애'가 아니다. 간혹 지나치게 '애' 취급을 해서 우리와 다른 문화적 관습으로 행동하는 것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혹시 밖에서 봉변을 당하지 않을까 싶어 한국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설명한다면 모를까 가슴이 드러나는 옷을 입는 것이나 애인과 동거를 하는 것 등을 두고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거다. 학생의 언어 실력만으로 학생의 인격과 그 외의 모든 것을 평가하지는 않아야 한다.
더불어 학생은 학생이지 친구가 아니다. 외국인 친구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학생을 대할 수는 없다. 학생과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친근한 강사가 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친근함으로 모든 실수와 수업 준비 부족이 덮어지길 바라지 말고 당신이 학생을 대할 때는 당신은 선생으로서 대한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거다.
다섯째, 인종과 국적에 따른 차별을 하지 마라. 위에서 말한 것처럼 당신은 친구를 만들기 위해 수업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교실에는 당신이 고르지 않은, 일부러 당신을 선택하지 않은 다양한 나라에서 온 다양한 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앉아 있다. 기본적으로 인간으로서도 다른 사람을 인종과 국적에 의해 차별해서는 안 되지만 당신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학생을 인종과 국적에 의해 차별하거나 호불호를 나눠서는 안 된다. 어느 나라에서 왔든, 어떻든 국적이나 인종에 따른 편견을 드러내는 말도 가능하면 안 하기를 바란다. 물론, 학습자군에 따른 특성은 있을 수 있다. 어떤 언어권 학습자는 어떤 발음이 안 된다거나 무슨 문법에 약하다거나... 그렇지만 어디에서 온 애들은 머리가 나쁘다거나, 어떤 국적의 학생이 많아서 보기가 좋다거나 이런 말은 안 했으면 좋겠다.
여섯째, 부당한 일, 열악한 근무 조건.. 당장 항의하고 대들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넘기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본인이 다치지 않는 범위에서 현명하게 대처하고 손해 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료들, 같은 곳에서 일하는 동료와 다른 곳에서 일하는 동료 모두와 그런 일들을 나눴으면 좋겠다. 나는, 언젠가 한국어 강사들이 동일 직업 종사자로서 연대하는 날을 꿈꾼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당하는 일을 개인적인 경험으로만 끝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당하는 일은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도 생기는 일이다. 그걸 묵인하고 쉬쉬하고 넘어가면 한국어 강사라는 직업은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집에 여유 있는 여자들이나 하는 일'이거나 '교수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거쳐가는 (직업도 아닌)일'이 될 것이다. 얼마 전 모 어학당에서는 강사들이 '개인 사업자'로 등록해야 할 사태가 벌어졌다고 한다. 즉, 학원이나 학습지 회사에서 강사/교사들을 정규직으로 임용하지 않고 고용주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쓰던 꼼수가 대학 어학당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2
나는 가만히 있으면서 당신들에게 모임을 조직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이 곳에서 어떤 부당한 근무 조건이 일반화되고 묵인되고 있는지 서로 공유하고 개선의 의지를 갖는 분위기를 만들어 보자는 거다. 3
정 말할 데가 없으면 여기 와서 방명록에 글을 남기든 댓글을 쓰든 공유해도 좋다. 나는 당신들 이야기를 듣고 함께 분노할 만큼 오지랖이 넓고 당신들의 익명성을 지키면서 글로 쓸 수도 있다. 그러니 언제든 상담해도 좋다.
해 줄 말, 하고 싶은 말은 계속 생각해 보면 이것보다 많겠지만 당신들이 전문적인 강사가 됨과 동시에 자기 자신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보호하는 데 더욱 적극적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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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제한된 경험만으로는 너무 부족해서요.^^
- 물론, 그 사람들 모두 좋은 강사는 아니다. 때로는 기가 막힌 사람도 있고 처음 만났을 때도 엉망이었지만 나와 같이 몇 년의 세월을 강사로 보내면서 내가 발전하는 만큼 함께 가기는커녕 뒤로 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고 하지 않나. '저러면 안 되겠다'라도 배워라. [본문으로]
- 한국어 강사의 하소연을 별거 아닌 일로 넘기는 이유는 많지만 그중 하나는, 한국어 강사란 국문과 교수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박사 과정 중에 또는 교수 자리 나오기 전에 거쳐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한국어 강사'라는 것을 하나의 직업군으로 인식하지 않고 '과정'으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학부 시간 강사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학부 시간 강사는 그런 성격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위해 투쟁하고 있지 않은가. [본문으로]
- 내가 이 블로그를 몇 년째-간헐적 포스팅을 하는 관계로 당당하지는 않지만- 운영하면서 다들 분노는 하지만 쉬쉬하고 있다 보니 왠지 나 혼자 벽 보고 소리 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서로 채용 공고를 알려 주고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문법 연구를 나누는 인터넷 카페는 많지만 하나의 직업군으로서의 고충을 나누고 개선점을 모색하는 모임은 여간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에, 그 이유를 납득하면서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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