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새다리의 한국어 가르치는 이야기
자모 수업 본문
읽어 주세요!! - 부탁의 말씀(각각의 글을 읽기에 앞서 )
한국어 수업의 첫 관문, 자모!
자모 수업은 한국어 강사나 한국어 수업에 관심있어 하거나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제일 신기해하고 궁금해하는 수업 중 하나다. 짐작하는 것처럼, 한국어는 인사 정도만 입말로 익혔거나 전혀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학생들에게 한글을 읽고 발음하는 것을 가르치는 수업이 바로 자모 수업이다.
수업을 하기에 앞서 다음 질문을 생각해 보자.
1. 한국어 학습자에게 자모의(자음) 이름(명칭)을 가르치는 일은 중요한가?
2. 자모의 순서를 또는 순서대로 가르치는 일은 중요한가?(사전 순서)
3. 자모의 음가를 익히는 것 외에, 학생을 어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앞의 두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모두 '아니다'이다.
첫 번째 질문의 경우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음가를 익히고 한글의 모양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에게는 큰 도전이다. 그런데 기역, 니은 등 이름까지 가르치는 것은 매우 소모적이고 학생을 질리게 만드는 일이다. 해당 자음이 그 이름에 쓰인다는 것은 자모를 다 알고 봤을 때나 재미있고 기억하기 쉬운 일이지 'ㄱ'의 음가도 정확히 모르겠는데 이름이 '기역'이라는 것까지 따라해야 한다면 과부하 상태에 이를 거고 강사와 학생에게 공용어가 없는 상황이라면 'ㄱ' 글자의 이름이 기역이라는 건지, 음가가 기역이라는 건지도 알 수 없을 거다. 자음의 이름은 좀 더 시간이 흘러, '이 글자에 이름이 있어요. 그건 바로....'이렇게 말해도 부담스럽지 않을 때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1
자음의 이름을 가르치지 않으면, 자모 수업을 하면서 'ㄱ'을 어떻게 지칭할 것인가? 이 질문을 기억해 두자.
두 번째 질문의 경우에는 의견이 좀 갈릴 것 같다. 많은 기관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순서대로 자모를 가르친다.
물론, 모음을 순서대로 쭉, 그 후에 자음을 순서대로 쭉 가르친다는 게 아니라,
대개 모음1->자음1->자모 결합->자음2(보통 경음)->모음2(보통 이중모음)->받침 (각 카테고리 내에서는 사전 순으로) 순서 정도로 배울 것이다. 기관마다 모음1,2 자음1,2의 구분은 다를 수 있다. ex) 모음1(ㅏ,ㅑ,ㅓ,ㅕ,ㅗ,ㅛ,ㅜ,ㅠ,ㅡ,ㅣ) 모음2(ㅐ,ㅒ,ㅔ,ㅖ,ㅘ,ㅙ,ㅚ,ㅝ,ㅞ,ㅟ,ㅢ) 등
그런데 나는 사전 순서가 절대적인 학습 순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종이 사전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그래도 사전 순으로 가르치는 것이 어느 정도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은 사전 순서를 아는 것이 종이 사전의 시대만큼 한국어 학습에 영향을(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자모를 배울 때 더 효과적인 제시 순서가 있다면 사전 순서를 굳이 고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바꿔 말하자면 자모를 더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제시 순서를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질문, 자모 음가 자체 외에 학생에게 어려운 일은, 음소들이 모여 하나의 음절을 구성하는 것 즉, 초성 중성 종성의 결합이다. 개별 자모가 병렬로 연결되어 있는 영어와도 다른 음절 구성 방식을 학습자들이 이해해야 하고 강사는 설명해야 한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모음은 그 자체로 발음을 하는데, 자음은 음가는 있지만 그 자체로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거다. 다시 아까 앞의 'ㄱ'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하는 질문을 떠올려 보자.
이런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 보는 것이 수업을 준비할 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속 기관의 교안이나 지침 대로 시뮬레이션을 해 보기에 앞서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수업 내용에 대해 고민해 보고 생각해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렇게 고민해도 결국 소속 기관의 교안과 지침을 따르는 것이 우선이니 이런 고민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겠지만, 뻔한 버전으로 말하자면, '이런 과정 자체가 훈련'이고 진취적인 버전으로 말하자면, '이런 과정으로 얻어낸 생각이 기관의 지침과 함께 수업의 양쪽 바퀴'가 될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기관의 자모 교육 과정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다. 단모음을 사전 순으로 다 배우고, 단자음을 사전 순으로 다 배운 후 자모 결합을(초성+중성) 배우는 방식의 단점은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지루하다. 모음1까지는 괜찮다. 일단 시작이고, 하나를 배우면 하나를 읽고 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 그러나 자음1까지 총 스무 개 남짓하는 글자를 발음만 배우는 건 지루한 일이다. 2
둘째, 많은 기관에서 따르고 있는 이 방식은 학습자들이 한국어 음절을 이해하고 발음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다. 자음을 제시할 때 보통 이름을 제시하지 않고, 모음과 달리 그 자체로 발음할 수 없기 때문에 임의로 'ㄱ'을 '그'로 가르치는 곳이 많다. 내가 소속된 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왜 하필 모음 'ㅡ'를 붙여 제시하는지 의문인데 아마 다른 모음들의 음가보다 특징이 도드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어 자음의 소리를 처음 만나는 학습자가 정확한 음가를 인식하기 어렵게 만드는 조합이기도 하다. 특히 몇몇 자음은 'ㅡ'와 결합한 소리가 학습자 입장에서 정말 인식도 소리 내는 연습을 하기도 어렵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소리를 배운 학습자들 중에는 정말로 'ㄱ'의 발음이 '그'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고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학습자들 입장에서는 '가'의 발음이 왜 [그ㅏ]가 아니라 [가]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또 종성까지의 결합을 배울 때도 '각'의 발음이 [가그]가 아니라 [각]인 게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받침의 종성에 자꾸 모음을 삽입하는 경향이 있는 학습자들에게 'ㄱ'의 발음이 '그'로 인식이 되어 버리면 발음 수정이 더욱 쉽지 않다. 따라서 강사에게는 딜레마가 생긴다. '그'로 각인되기 전에 자모1 부분을 빨리 지나가자니 음가를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넘어가게 되고, 음가를 확실히 익힐 때까지 연습 시키자니 '그'가 너무 강하게 각인되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기관에서 배정 받은 수업 외의 교실에서는(팀티칭이 아니라 혼자서 자모 수업을 모두 진행할 수 있는 경우나 개인 수업 등) 모음1 다음에 자음1 수업을 따로 하지 않고 바로 자모 결합을 설명하는 순서를 선호한다. 이렇게 하면 'ㄱ'을 [그]로 제시할 필요도 연습할 필요도 없다.
일단 모음1 수업을 한 후, 학생들이 모음을 어느 정도 익혔으면 'ㅇ'과의 결합을 통해 음절의 구성을 설명한다. 'ㅏ'는 이것만으로 한 음절(글자)를 구성하지 못하며 음절은 CV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고 그 자리에 'ㅇ'을 쓰고 '아, 야, 어, 여...'가 지금까지 연습한 'ㅏ,ㅑ,ㅓ,ㅕ...'와 발음이 같다는 것을 설명하고 읽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ㅇ'이 있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많은 자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게 다음 학습 내용임을 설명한다.
자모 결합 설명을 좀 더 쉽게 하기 위해, 모음1 수업을 하기 전 즉, 자모 수업의 가장 처음에, 학습 내용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CV 음절로 이루어진 단어를 칠판에 쓴다. 보통은 유명한 스타의 이름이거나 그 학교(기관)의 이름을 이용한다. 칠판에 쓴 단어의 모음 부분을 다른 색깔 펜으로 덧칠하면서 첫 학습 요소가 그 글자들(모음)임을 보여 주면서 모음 제시를 한다. 이 단어는 지우지 않고 칠판 한쪽에 남겨뒀다가 모음1 수업과 자모 결합 수업 사이에 다시 한번 읽으면서 그 단어의 음절 중에 일부만 배웠고, 하나의 음절은 모음과 또 다른 것이 만나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데에 이용한다.
그 다음에는 자음을 제시하는데, 사전 순서에 얽매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사전 순서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 '내키는 대로'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선, 학습자들이 발음을 인식하고 발음하기에 상대적으로 용이한 자음을 첫 그룹으로 제시한다. 나는 'ㅁ'과 'ㄴ'이 그렇다고 생각해 두 자음을 가지고 기 학습한 모음과 결합하면서 음가와 음절 읽기 연습을 한다. 물론, 이 기준에는 이의가 없더라도 그 기준으로 내가 선택한 자음에는 논란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사전 순서로 제시한다는 것도 나한테는 타당성이 다소 부족해 보인다. 물론 특별한 기준과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라면 굳이 사전 순서를 무시할 이유도 없다. 3
그 다음에는 평음, 평음 다음에는 격음 순으로 마찬가지로 결합하면서 음가와 음절 읽는 법을 제시하고 연습을 시킨다.
결합의 요소인 모음과 자음을 다 배운 후에야 결합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거다. 결합 요소 중 한 가지를 배우지도 않은 채 결합부터 설명하는 것이 학습자에게 부담이 될 거라고 느끼는 경우도 있을 거고 실제로 부담을 느끼는 학습자도 없지 않다. 4
그러나 두 가지 방법으로 수업을 해 본 경험으로는 자모 결합을 먼저 했을 때의 단점보다 자음을 먼저 가르치느라고 자음의 음가를 '그, 느, 드'로 제시했을 때 단점이 더 치명적이다. 전자는 최소한 학습자의 오해나 오류를 유도하지 않는다. 후자는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앞서 말한 오해로 인한 혼란을 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자음 음가 제시에 앞서 자모 결합을 먼저 설명하는 경우에 전체 자모 수업 시간이 단축된다는 장점은 덤이다.
둘 중 어떤 방법으로 가르치든 자모 결합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그냥 '나, 너, 노' 등 음절을 보여 주고 읽게 하는 것이 아니라 'ㄴ'이라는 자음이 앞서 배운 'ㅏ,ㅑ,ㅓ...' 등과 하나씩 만나서 음절을 이루는 것을 계속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자음 n개 x 모음 n개> 만큼의 글자를 암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도 있을 수 있다.
또한 한글 자모 수업은 10시간 안팎이 소요되는데 그 동안 어휘나 표현 학습 없이 한글만 배우는 것은 굉장히 지루한 일이다. 자모 읽기 연습을 위해 강사가 제시하는 어절은 물론 한국어 어휘들이겠지만 학습자 입장에서는 그냥 자모가 결합한 덩어리일 뿐이니 끊임없이 의미도 모르는 음절과 어절들을 읽고 있다는 게 얼마나 지겹고 힘들겠는가. 그래서 나는 준비한 단어 카드로 읽기 연습을 하는 중간에 한두 개 정도는 의미를 알려주기도 한다. 의미를 알려줄 필요가 없이 학습자들이 금방 알 수 있는 단어를 카드에 끼워 넣기도 한다. 유명인의 이름이나 '쿠키', '초코', '바나나' 등과 같은 단어들 말이다. 단어 학습의 목적은 전혀 없이 흥미를 끌기 위한 방편이다. 학생들은 방금 배운 것이 실제로 유용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을 거다.
내가 진도를 계획할 수 있는 과정이라면, 한글 자모 수업만 연속으로 하도록 짜지 않고, 그날 수업의 마지막 30분~1시간 정도는 글자를 읽지 않아도 진행할 수 있는 수업을 넣는다. 예를 들어 첫날 자모 수업을 하고 마지막 30분 동안 '안녕하세요. 저는 ○○○입니다' 두 문장을 연습하는 수업을 진행하는 것과 자모 수업만 하고 끝나는 것은 학습자 입장에서 큰 차이가 있다. 자모만 배우고 끝나도 배운 게 있지만, 첫날부터 인사와 자기 이름을 한국어로 말할 수 있게 된다면 수업 효과를 더 크게 느낄 것이다. 특히 하루 네 시간씩 진행하는 대학 기관의 경우 네 시간 동안 수업을 들었는데 구어 표현은 하나도 연습하지 않고 집에 돌아오는 건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다.
음... 꼭 이 방법을 쓰라는 것도 아니고 수업 단계에 맞춰 교안 쓰듯이 쓰는 글도 아니라 마무리가 좀 어려운데, 자모 수업에 대한 글을 쓰면서 하고 싶었던 말은, 기존의 방식이 너무 확고하더라도 그냥 무조건 따르지 말고 그게 정말 절대적인 것인지에 의문을 던지고 생각을 해 보라는 것이다. 무조건 기존 방식에 반감만 가지라는 건 아니다. 의문을 갖는다는 게 그냥 '정말 이렇게 안 해도 되지 않냐?'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라는 것도 아니고, 깊이 생각도 하지 않고 편한 대로 마음대로 하라는 것도 아니다. 해당 학습 내용을 이해하고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통찰력 있는 의문을 가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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