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새다리의 한국어 가르치는 이야기
수업 준비부터 시작 본문
읽어 주세요!! - 부탁의 말씀(각각의 글을 읽기에 앞서 )
이 카테고리의 첫 번째 글은 수업 준비에 대한 이야기이다. 바로 개별 문법을 다루지 않고 수업 준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을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부분을 다루지 않고 개별 학습 요소에 대한 노하우만 풀어놓는다면, 낚시하는 법은 말하지 않고 무슨 물고기를 몇 마리나 잡았는지만 말하는 꼴이 될 것이고 '주관적이고 직관적인' 수업은 제멋대로인 수업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낚시와 물고기로 비유하고 나니 내가 꽤 대단한 걸 알려 줄 것 같지만 그냥 보통 한국어 강사의 평범한 노하우에 불과하다. 다만 한국어 수업 준비를 처음 해 보는 사람들은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할 것 같아서 내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다. (강사마다 자기 방식이 있을 테니 일반화는 금물)
우선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내 교실에 있는 학생들에게 한국어는 0부터 100까지 생소한 언어이고 학생들은 국어학이 아니라 한국어를 배우려고 앉아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국어 문법론이나 어문 규정에 어긋나게 가르쳐서는 안 되지만 학생들이 그 내용을 세세하게 다 알 필요도 없고 때로는 모어 화자가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을 알아야 하기도 하고 반대로 단순화한 내용으로 배우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국어 강사는 모어 화자로서는 어려운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바로, 한국어를 낯선 사람의 눈으로 생각하기이다.
자, 그럼 그 눈으로 가르칠 문법을 보자.(이 글에서는 문법 수업을 중심으로 하겠다.) 나는 수업을 위해 문법을 연구(공부)할 때 처음부터 문법서를 보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문법(표현)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교재/사전/실자료에 있는 예문, 직접 만든 문장을 놓고 의문을 가져야 한다.
왜 한국인(한국어 모어 화자)은 이 문법을 사용하지?
왜 이 문장에 이 문법이 필요하지?
왜 이 문장에는 이 문법을 사용하지 않았지?
여기에/이런 상황에서 이 문법을 사용하면 왜 비문이 되지?
왜 이 단어를 함께 쓰면 문장이 어색해지지?
왜 이 장면, 이 대화에서는 이 문법을 이용해 질문/대답할 수 없지/있지?
왜 이 교재에서는 예문으로 이런 문장을 썼지?
왜 이 교재에서는 이런 연습을 하지?
등등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았다면 해 보지 않았을 낯선 시선으로 던지는 질문 말이다. 1
이런 질문을 통해 그 문법을 규정할 수 있고 문법을 사용할 때의 제약을 찾아낼 수 있다. 또, 무의식적으로 사용해 온 표현에 '왜'라는 질문을 하여 학습자의 눈높이에서 문법을 볼 수 있게 된다.
문법서를 먼저 보지 말라는 것은 문법서 등의 이론을 중시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스스로 답을 찾는 연습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강사에게도 필요하다. 직접 답을 찾기 전에 해답지를 보지 말라는 의미다.
한국어 교육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문법이나 어휘 관련 질문을 보다 보면 스스로 답을 찾아 가는 과정이 없이 남이 써 놓은 해답을 기대하거나 찾아온 해답에 해설을 달아 줄 것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렇지만 다양한 예문을 보면서 그 안의 질서와 논리를 찾아 내는 것도 강사가 갖춰야 할 자질이 아닐까? 그런 과정이 학습자들의 오류에 대한 예방 접종의 역할을 할 것이다. 또 낯선 시선으로 던진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면서 국어학적 정의나 설명이 아니라, 학습자들이 표현을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라인을 찾아낼 수 있다.
문법서는 여러 예문들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 낸 정의에 힘을 실어주거나 여전히 불명확하거나 알 것 같지만 두루뭉수리한 부분을 선명하게 해 주고 잘못 생각한 부분을 수정하도록 해 줄 것이다. 문법서에 정리 되어 있는 설명을 먼저 본다면 이런 과정을 경험하기 어려울 것이며 그 틀에 맞추는 수업을 설계하느라 학습자의 관점으로 전환하여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이제 문법 연구(공부)가 끝났다면 학습자에게 제시할 대화문(또는 문장)을 생각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보여 줄 예문은 학습 문법의 기본적인 정의와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야 하며 더 나아가서는 제시하는 과정을 통해 학습자들이 문법에 대해 짐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문장'뿐만 아니라 문장을 말하는 상황도 고려하면서 대화쌍(또는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화 상황을 설명하는 일이 문법 설명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주객전도 상황이 되어서도 안 되고 자연스러워야 하고 문법의 쓰임을 가장 잘 드러내는 상황을 생각해 내야 한다. 초급에서는 실생활에서 응용할 수 있는 전형적인 문장이나 대화쌍을 준비한다면 금상첨화이다.
여기에 활용형의 형태까지 생각해야 하니 가장 적합한 대화쌍(또는 문장)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그런 경우에 중고급으로 갈수록 활용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포기하기도 한다. 중급에서도 다양한 활용형이 존재할 때에는 포기할 수 없긴 하다.
활용형에 대한 얘기를 꺼낸 김에 말하자면, 초보 강사들이 많이 하는 실수 중에 하나가 바로 '문법 설명=활용형 설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의 수업 실습을 하다 보면 의미 설명은 손짓, 몸짓과 함께 문장을 여러 번 읽거나 '이유', '대조' 등으로 끝내고 활용형 설명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활용형 설명도 필수적인 부분이지만 그게 문법 설명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이해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나는 나의 직관을 믿는다. 동시에 스스로를 의심한다.
사실 직관을 이용하라는 것은 위험한 말이 될 수도 있다. 직관을 경계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모어 화자라고 하더라도 어문 규정에 꼭 맞게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언어 생활이 제한적이고 시야가 좁아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할 수도 있다. 따라서 (모어 화자든 제 2언어 화자든) 자신의 한국어 구사 능력을 과신하고 직관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 그러나 동시에 완전히 무시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2
문법서와 연구들에서 정리해 놓은 화용적 의미를 교실에서 학습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실생활의 모습으로 각색할 때나 문답 연습이나 유의 연습의 형태로 체득할 수 있도록 설계할 때도 직관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포스팅 시리즈의 테마도 주관적이고 직관적인 수업일지이다. 주관과 직관을 내세우는 것은 이론을 무시하겠다는 게 아니라, 너무 '나만의 방식'이 아닐까 우려되어 남들에게 쉽게 공개하지 않은 내용들로 채워 보겠다는 의미이다.
현업의 사정에 따라 시리즈의 지속성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얼마나 꾸준히 포스팅할지도 모르겠고,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크게 새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번 열어 보겠다.
** 참고 포스팅: 2013.07.06 - [나는 한국어 강사다] - 한국어 강사로서 한국어 문법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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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질문뿐만 아니라, 예를 들어, '이 문장은 예외인 것 같은데, 비문인데 우리가/내가 쓰는 걸까, 아니면 허용 범위에 있는 예외일까?' 같은 질문도. [본문으로]
- 교실 안팎에서 필요한 직감은 단순한 감이나 짐작이 아니다. 꾸준한 노력과 훈련으로 쌓아 온 한국어 지식을 기본으로 하여 발달한 날카롭고 예리한 작용을 말한다. 직관을 발달 시키기 위해서는 언어 생활의 범주를 넓히고 주변의 언어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의문이나 호기심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등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 쉽게 말하자면 언어 센스를 키워야 한다. 언어 지식을 쌓아야 하는 건 당연하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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