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새다리의 한국어 가르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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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규칙의 규칙을 찾아서

간새다리 2022. 2. 1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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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세요!! - 부탁의 말씀(각각의 글을 읽기에 앞서 )

* 긴 글 주의! 스크롤 압박 주의. (짧게 쓰고 싶은데 매번 실패하네요)

  초급 학생들에게 첫 어미인 해요체를 가르칠 때부터 초보 강사들을 당황하게 하는 벽이 있다. 바로 불규칙 활용이다. 어떤 언어에 불규칙이 있다는 것은 별로 새삼스러운 일도, 특별한 일도 아니다.[각주:1] 다만, 한국어는 첫째, 초급 수업을 시작하자 마자 어미 활용을 가르쳐야 한다는 점, 둘째, 그 어미 활용의 형태 수업이 '규칙'만 설명하기도 만만한 게 아니라는 점, 셋째, 초급에서 처음으로 학생들에게 제시할 기본 용언 중에 불규칙 활용을 하는 용언을 도저히 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이 벽이 더 커 보인다.(여기에 불규칙 용언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사실은 규칙 활용을 하는 예외적인 용언들이 학습 어휘 목록에 기본적으로 많이 들어가 있다는 점도 추가할 수 있겠다.) 물론 불규칙 활용은 학생들을 초급 때만 괴롭히는 건 아니다. 한국어의 용언들은 계속해서 다양한 어미를 만나 활용을 하므로 중급 때에도 형태 설명에서 꼭 언급을 해야 하고 많은 학생들이 형태 오류를 범한다.

 먼저 기본적인 팩트 체크부터 해 보자. 한국어의 불규칙 활용은 몇 종류나 될까.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두산 백과 사전에 따르면 모두 여덟 종류가 있다. 위키피디아(나*위키 아님), 두산 백과 사전과(네이버 제공), Basic 중학생을 위한 국어 용어 사전(네이버 제공)에서 각각 개수가 다른데,  '으' 탈락과 'ㄹ' 탈락을 요즘 학교 문법에서는 불규칙활용으로 가르치지 않는데 여전히 포함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또한 '우'불규칙처럼 해당 용언이 한 가지인 경우를 포함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다르다. 그렇다면,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 교실에서는 이 불규칙 활용을 어디까지 언제 가르쳐야 할까?

▶ 무엇을 언제 가르쳐야 할까?- '한국어 교실'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그럼, 백과 사전이나 문법서에 나오는 불규칙 활용을 쭉 모아서 앞에 두고, 질문을 해 보자.(이전 글들에서 강조한 것처럼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아 보는 것이 중요하다.)

- 학생들은(급에 상관없이 모든 한국어 학습자) 이 불규칙 활용을 모두 알아야 할까?
- '으' 탈락과 'ㄹ' 탈락은 학교 문법에서 불규칙 활용으로 가르치지 않는다는데 한국어 교실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 초급에서 해요체를 처음 배울 때부터 모든 불규칙 활용을 다 제시해야 할까?
- 그렇지 않다면 전체 교육과정에서 불규칙 활용은 언제 어떤 순서로 제시되어야 할까?
- 그리고 불규칙 활용은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첫 번째 질문과 두 번째 질문은 학교 문법과 한국어 교실에서 다루는 문법의 차이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가거라(가다+아/어라)', '오너라(오다+아/어라)' 동사 '달다'의 하오체 명령형인 '다오', 적용되는 용언이 '푸다'가 유일한 '우 불규칙'은 과연 일반적인 상황과 목적의 학습자 집단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학습자들이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가거라' '오너라' '다오'를 얼마나 자주 들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자. '우 불규칙'을 별도로 수업을 하는 것과 '푸다'라는 동사가 학습 내용으로 다뤄질 때 언급하는 것과 어떤 것이 효율적인지를 고민하다 보면 '푸다'의 사용 빈도와 학습 어휘로서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될 것이다. 

  '으' 탈락과 'ㄹ'탈락은 한국어 교실에서는 일반적으로 '불규칙'이라고 하고 나도 그걸 당연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국어 학습자들에게 이걸 '불규칙이 아니라 음운 탈락'이라고 설명하는 것의 이점이 학생들이 그 설명을 하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학생들의 혼란이 가치가 있을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들에게는 탈락이든 불규칙이든 자기들이 배운 활용 규칙의 예외 상황이라는 점에서 동일하고 바로 그게 한국어 수업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불규칙 활용이 교육 과정에 포함되는 방식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새로운 종결 어미나 연결 어미를 가르칠 때마다 형태 설명 시에 불규칙 용언들을 정리해 주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불규칙 활용을 위한 시간을 따로 할애해 가르치는 방식이다. 기관마다 설계한 교육과정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많은 경우 두 가지 방식을 모두 사용하거나 전자의 방식으로만 가르친다. 따로 시간을 할애해 불규칙 활용 수업을 하는 경우 한 번의 수업 내에 모든 종류의 불규칙 활용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급에 따라 학습할 불규칙 활용을 선정해 시차를 두고 여러 차수에 나누어 가르친다. 어미 활용을 학습할 때마다 형태 설명 단계에서 불규칙 활용을 확인하는 경우에는 조금 더 다이제스트 하게 설명을 하는 것이 좋다. 그 수업 시간에 중요한 건 해당 문법이지 불규칙 활용은 아니니까. 

 해외의 대학에서 초급 과정을 마치고 온 어느 학생으로부터 한글을 배운 후 본격적인 문법 수업을 시작했을 때 불규칙 활용을 모두 배웠다는 얘기를 듣고 무척 놀란 적이 있다.[각주:2] 아마 그 과정을 설계한 사람은, 어미 활용 학습을 시작하기 전에 사전 지식으로 모둔 종류의 불규칙을 알고 있으면 이후 문법 학습에서 형태 학습이 용이할 거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설계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물론 강사가 한국어가 아니라 그 국가(문화권)의 언어로 설명했기 때문에 설명 자체가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수업의 효과와 효율성에 대해 생각해 보면 긍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알고 있는 단어도 종결 어미나 연결 어미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8~9 종류의 불규칙 활용을 배우면 얼마나 이해가 되고 그 지식이 이후 종결 어미나 연결 어미를 배울 때 얼마나 좋은 배경 지식이 될까? '크다', '쓰다', '예쁘다','아프다'를 모르고 '-아/어요'를 모르는 학생에게는 '크어요'가 아니라 '커요'이기 때문에 불규칙이라는 설명도 '그렇게 말하니 그런가 보다'정도가 될 것이다.

 즉, 불규칙 활용의 학습 순서는 학생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위에서 언급한 '으' 탈락은 '-아/어요' 학습 후에는 바로 따로 정리해 수업을 할 수 있을까? 내 대답은 '아니'이다. 불규칙 활용을 하는 용언들은 모든 어미 활용에서 불규칙 활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종류 별로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 불규칙 활용이 가능하다. 따라서 '으' 탈락의 용언들이 불규칙 활용을 하는 어미뿐만 아니라 규칙 활용을 하는 어미와의 결합도 제시해야 한다. 즉 실험군과 대조군이 모두 필요하다는 말이다.[각주:3]  'ㅅ' 불규칙의 경우, 초급에서 배우는 단어 중 어간에 'ㅅ' 받침이 있는 단어는 웃다, 씻다 낫다 정도인데 'ㅅ'불규칙을 초급에서 가르친다면 학생들이 알지도 못하는 단어 짓다, 붓다, 잇다 등을 예로 들어야 할 것이다. 단어의 의미야 그 자리에서 가르치거나[각주:4] 모른 채 형태만 보고 수업은 할 수 있겠지만 이후에 당분간 최소한 수업에서는 사용되지 않을 단어의 활용을 학습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차라리 '낫다' 어휘 학습 때 이 어휘만 특별한 케이스로 형태를 알려 주는 방식이 부담이 덜할 것이다.

▶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전체적인 교육과정에 대해 얘기해 봤으니 이제 어떻게 설명할지를 생각해 보자.  한국어의 불규칙 활용은 어떤 단어가 어떤 조건에서 불규칙 활용을 하는지가 명확하다. 즉, 불규칙에도 규칙이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 규칙만 정확하게 파악하면 된다. (물론 공부할 게 많다는 점에서 여전히 학생에게는 골치 아픈 일이지만 무작정 외우는 것보다는 명확한 규칙이 있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의외로 많은 신입 강사들이 이 불규칙의 규칙을 잘 모른다. 나도 강사가 되기 전에는 한국어를 구사하고 살면서도 이걸 따져 본적은 없으니 막 강사가 된 사람이라면 모르는 게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런데 불규칙 활용에 대해 그 실체보다 더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도 존재하는 것 같다. 아마 '불규칙'이라는 용어가 주는 '규칙이 없다'는 이미지의 막막함이 불규칙의 규칙을 생각해 보려는 생각을 막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문법서나 교안에 있는 몇 줄의 설명에 의존하고 싶어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고. 그렇지만 불규칙 활용은 다른 문법과 달리 형태만 가르치면 되고 그 변칙적인 형태의 조건과 상황이 명확하기 때문에 예상보다 난이도가 낮으며 그렇기 때문에 문법서를 찾기 전에 직접 답을 찾는 방식을 시도해 보기에 가장 좋은 학습 요소 중 하나이다. 

  우선 각각의 불규칙 활용의 대표적인 용언을 서너 개 써 놓고 다양한 어미들과 결합을 해 보자. 가능한 많은 어미와 결합해 보는 게 좋다. 그러면 어떤 어미와 결합했을 때 규칙을 따르고 어떤 어미와 결합했을 때 불규칙 활용을 하게 되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그 다음에는 결합할 때 불규칙 활용을 한 어미들의 공통점을 찾아 보자. '-아/어-'로 시작하는 어미인지, '-으'로 시작하는 어미인지 또는 다른 공통점이 있는지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불규칙 활용의 형태적인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규칙 활용을 하는 용언은 무엇이 있는지, 그렇게 나뉘는 특징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예를 들어, 'ㄷ 불규칙'의 경우 어간에 ㄷ 받침이 있는 용언 중에는 불규칙 활용을 하는 것도 있고(듣다, 걷다, 묻다 등) 규칙 활용을 하는 것도 있는데(믿다, 받다, 얻다 등) 여기에 어떤 기준이 있는지 아닌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예외적인 용언을 제시할지 아닐지도 함께 생각해 봐야 하는 사항이다.

  더이상 모음조화를 따르지 않는 ㅂ 불규칙은 'ㅂ'이 '우' 또는 '오'로 바뀐다고 설명하는 것보다 ㅂ이 '우'로 바뀌는 것을 기본으로 '오'를 예외로 설명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데, '오'로 바뀌는 것은 '돕다'와 '곱다' 정도이다.  '돕다'는 그렇다 치고, '곱다'는 꼭 알려줘야 할까? '곱다'를 알려주지 않는다면 (학생들 입장에서는 ) 하나뿐인 이형태 활용인 '돕다'를 설명하는 건 필수적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각자의 결론은 넓게는 일반론적인 입장에서, 좁게는 각자 사용하는 교재, 근무하는 기관의 교과과정 속 기 학습된 또는 가까운 시일 내에 학습될 수업 내용에 입각해서 내려질 것이다.

  각자의 공부가 끝났으면 이제 학생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하는 것이 가장 간단명료한지 설명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불규칙을 제대로 가르치기로 했다면 그 수업에서는 "'덥다'의 해요체는 더워요라는 걸 그냥 외우라"는 설명을 해서는 안 된다. 강사가 파악한 불규칙의 규칙을 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 줘야 한다. 위에서 소개한 두산 백과 사전이나 위키피디아처럼 '어간의 받침 ㅂ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 '우'로 바뀌는 용언/활용'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 않은가.

  평균적인 학습자들은 언어학적인 지식이 '보통'에 해당한다고 가정한다면 어간이라든지 어미 같은 용어들은 사용할 수 없으니 불규칙 수업을 할 때에도 이전 글 단순한 설명, 눈에 보이는 설명에서처럼 시각화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각주:5]

눈으로 해당 불규칙 활용을 따르는 용언의 특징을 보여주고 어떤 어미를 만날 때 불규칙 활용을 하는지 해요체 설명과 마찬가지로 공식화 해서 설명을 한다. 이때 어간/어미의 모양이 바뀌는 것을 어느 단계에 보여줄 것인지도 중요하다. (이미지 참고-각각 다른 단계에서 변칙적인 형태를 적용한다. 어떤 것이 가장 합리적으로 해당 불규칙 활용을 잘 설명하고 있나?)

  'ㄷ 불규칙'은 그나마 가장 간단한 축에 속하는데, 'ㄹ 탈락'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대체 어디에서부터 설명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ㄹ 탈락' 설명을 더욱 용이하게 만드는 키는 '받침으로 끝나는 어간이지만 받침이 없는 것처럼 여긴다'는 설명이다. 그 다음이, 어떤 글자로 시작하는 어미가 'ㄹ' 받침을 실제로 탈락하게 만드는가 하는 것이다.  이 생각을 바탕으로 위의 이미지처럼 수학 공식 풀듯 시각화하면 어느 단계에서 'ㄹ' 음운이 탈락하는 것을 보여주는 게 효과적인지 결정할 수 있다.

  잘 정리된 문법서가 있는데 이런 걸 왜 직접 고민하고 생각해야 하는지 의문인가?

 중고등학교 때 수학 문제 풀던 걸 기억해 보자. 직접 풀지는 않고 맨 뒤에 있는 해설을 눈으로 보고 '아 그렇구나'라고 이해한 문제와 직접 풀면서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이해한 문제의 차이를 알고 있다면 직접 규칙을 찾아 보고 학생들에게 설명할 방법을 정리하는 것의 장점을 알 수 있을 거다. 내가 직접 규칙을 찾는 것만큼 학생들에게 잘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당장 각각의 불규칙 활용의 규칙을 찾아 보자. 그리고 몇 급 학생들에게 수업하는 것이 적당한지 생각해 보고 그 수준의 학생에게 가장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정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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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사들이 불규칙을 불편해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학생들이 불규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못 받아들일 거라는 짐작 때문인데,  불규칙 용언이라는 존재 자체를 학생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겠지만 사실 어느 언어에나 예외나 불규칙이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 자체는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좀 불편하고 성가실 뿐. 간혹 왜 규칙을 지키지 않는 단어들이 있냐며 불만을 표현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그럴 때 나는 그 학생의 언어에도 그런 게 있다는 걸 상기 시킨다.  [본문으로]
  2. 불규칙뿐만 아니라 발음 규칙도 모두 배웠다고 한다. [본문으로]
  3. 물론 '으' 탈락의 설명이 복잡해서 이 이유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초급 초반 단계에 수업하기는 어렵다 [본문으로]
  4.   이 역시 어휘 의미를 설명하다 보면 수업의 핵심이 흐트러질 수 있고 학습 요소가 두 가지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어 학습 부담이 배가되어 바람직하지 않다. [본문으로]
  5. 사실 (종결/연결) 어미 몇 개를 배우면 학생들은 이제 동사나 형용사에서 '다'를 제외한 부분만 어미와 결합을 한다는 것 그리고 어간의 마지막 음절의 형태가 활용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거나 최소한 눈치를 채고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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