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새다리의 한국어 가르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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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어 강사다

또 떠나보내기

간새다리 2009. 11. 23.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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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강사라는 직업을 떠 올릴 때 사람들은 아마 '외국인을 많이 만난다'는 것을 생각할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워낙 사교적인 활동을 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내가 매일 만나는 한국인의 숫자만큼이나 외국인을 만날 것이고 매년 새로 알게 되는 사람은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을 것이다.
  이미 일상이 돼 버려서 내가 서울 한복판에 살면서 한국인보다 더 많은 외국인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놈의 직업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큼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직업이다.
  會者定離(회자정리).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당연하니 무슨 일을 하든지 만나는 사람들과 언젠가는 헤어지게 될 테니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닐 것이다.
  대학 한국어 교육 기관의 정규과정이 보통 10주로 이루어지다 보니 10주에 한 번씩 20여 명의 학생과 헤어지는 것은 기본이다. 사실, 인간 관계를 갖는 데에 있어서 지구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이 10주라는 기간이 안성맞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헤어짐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다.
  학기를 거듭할수록 10주라는 기간이 더 빨리 지나가기 때문인지 중간 시험이 지난 다음부터는 '벌써..?'라는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뭔가 짠한 기분이 최고조가 되는 것은 기말 시험을 보는 날이다.  밤을 새우고 초췌한 모습으로 눈을 부릅 뜨고 앉아 있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말이다. 신입 강사 시절과는 달리 학생들에게 정이 드는 속도가 느려져서 유대감이라든지 긴밀함을 전만큼 느끼지 못 하는데 그 순간이 되면 지난 9주 동안 조금씩 쌓여 온 그들과 나 사이의 감정이 내가 느끼고 있는 것보다 두텁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내가 그 동안 조금 더 신경 쓸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일들이 밀물처럼 몰려온다.
 내가 쉬는 시간에, 수업이 끝난 후에 조금 더 시간을 할애했다면 지금 저 녀석이 유급할까 봐 맘 졸이면서 시험 보지 않아도 될 텐데, 왜 더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부터 각 학생과 있었던 에피소드 중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실수했다고 생각되는 일, 잘 못한 것 같은 일 등등...
 그렇게 10주가 흐르고, 아쉬워하면서 수료식을 마치고 나면 허탈함이 밀려 온다. 사람에 따라 다르고, 경력이 더 오래되면 이런 감정이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학생들과의 관계가 좋았든 그렇지 않았든 시원섭섭한 그 허전함은 수료식 이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허전함과 비교되지 않는 헤어짐의 비애는 따로 있다.
  매 학기의 서운함과 아쉬움은 사실, 같은 학교에서 앞으로도 계속 마주치고 어쩌면 그 다음 학기에 다시 같은 반에서 만날 수도 있는 학생들과의, 그 동안의 시간과 정에 대한 확인이라면 이 헤어짐이 주는 아쉬움은 이제 정말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아쉬움이다.
  유학 준비생, 어학 연수생이 대부분인 학생들은 예정된 한국에서의 시간이 끝나면 또는 도중에라도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사람들이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그들을 그들의 나라로 보내는 절차를 밟게 된다. 가깝게는 일본으로 멀게는 유럽 또는 남미의 어느 나라, 어느 도시로 그들은 돌아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의 역할, 그들 자신이 주인공인 대하드라마 속 나의 역할은 (거의) 영원히 끝난다. 계속 연락하고 지내는 경우도 있고, 한국에 온 김에 인사차 찾아 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말이다.
 그들이 내게 내 역할의 하차를 알리는 순간에는 이제 이 사람을 다시는 못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아쉬움과 그를 대하는 동안 내가 강사로서 한국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보여준 모습에 대한 후회에 복잡한 심정이 된다.

  살면서 이렇게 짧게 관계를 가지고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되는 인연이 없는 것도 아닌데 학생들과의 관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은 언어 강사와 학생의 관계라는 특별함 때문인 것 같다.
  '말'을 배우고 가르친다는 것은 단지 언어의 규칙과 의미의 전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학습한 규칙과 의미를 사용해 그들과 나 사이에 대화가 이루어지고 그 대화는 '언어'라는 껍데기와 '생각' 또는 '그 자신'이라는 알맹이를 모두 가지고 있다. 결국 나는 가르치는 행위를 통해 나를 나누고, 그들은 배우는 행위를 통해 그들을 나눈다. 우리가 함께 하는 수업 시간은 어쩔 수 없이 '관계의 장'이 되는 것이다.
  또, 외국인 학생과의 만남은 '회자정리'라는 말이 전하는 철학적인 필연성이 아니라 만남 자체의 필연성으로 '스쳐 가는 인연'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것도 학생들과의 이별을 아쉽게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어 강사 노릇을 하면서 一期一會(일기일회)라는 말의 의미를 새삼 느끼고 있다.

  뭐, 그러면서도 매 학기가 끝날 때쯤에는 늘 더 충실한 강사가 못 되었던 것에 후회하는 일상을 살고 있지만 말이다.

  또, 한 학기를 보내고 있다. 게다가 학기 중에 10주 이상을 끌어 온 특별 프로그램의 수료식도 한번 진행된 탓인지(연말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고) 유독 학생들을 보낸다는 것에 감상적인 기분을 갖게 된다. 심지어, 연차가 높아짐에 따라 전보다 아쉬움이 작아진다는 것에조차 감상적이 된다. 사실, 스스로 더욱 무덤덤해지는 걸 느낄수록 심정은 더 복잡해지니 참 아이러니하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더 무덤덤해질지, 아니면 다시 과거의 아쉬움과 서운함을 회복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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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번 글을 쓴 지는 꽤 됐지만, 어쨌든 지난 번 글의 강도가 좀 셌기 때문에 이번에는 좀 더 개인적이고 가벼운 것으로 써 봤습니다.
  혹시 제가 다루기를 바라는 주제가 있으시면 댓글로 제안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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