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새다리의 한국어 가르치는 이야기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이 많다고요? 본문
"외국인, 한글 실력 뽐내세요.(서울신문 2008-09-03)"
"외국어로 된 한글학습 교재 발간(YTN 2009-01-19)"
"성남시 이주여성 한글 교육(경향닷컴 2009-08-20)"
"거제 삼성重에 외국인들의 한글 배우는 소리(연합뉴스 2009-10-08)"
"캄보디아의 한국어 열풍‥(MBC 뉴스데스크 2009-11-22)" -캄보디아에서는 한글을 배우는 젊은이들의 열기가‥ (앵커 멘트)
심심하면 한 번씩 이런 뉴스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다문화가정에 대한 관심 증가와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이 표기 문자로서 한글을 채택한 일을 계기로 요즘 들어 각종 매체에서 한국어 학습 열풍이라든지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에 대한 기사들을 더 자주 싣고 있는 것 같다.
한국어 강사로서 이런 기사들을 반가워해야 하는 것이 당연할 텐데 나는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다. 일단, 어떤 것을 소개할 때 그 열풍이라든지 인기를 좀 과장되게 포장해서 호들갑을 떠는 한국 언론이 한국어 학습에 대한 관심 역시 거품으로 만들어 버려서 여러 가지 역효과(소규모이기는 하지만)를 생산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또, 이런 인기를 전하면서 은근히 민족주의나 민족적 우월감을 부채질하는 것도 싫고 이런 인기와 동반하는 경제적인 효과는 강조하면서도 그 한편에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는 한국어 강사라는 직업에 대한 고찰과 그런 열기를 이용해 어학 연수생들을 돈주머니로 보는 몇몇 대학 기관의 그릇된 행태에 대한 비판은 단 한 줄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는 나중에 차차 하기로 하고.....오늘 이런 기사 제목들을 읊어 본 이유는 이 기사들이 내게 달갑지 않으면서 동시에 우스운 이유...'한글을 배운다'는 표현 때문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어서 새삼스럽지만 대표 언론사의 기자와 앵커마저도 잘 못 사용하고 있는 단어, '한글'을 검색해 보면 네이버 백과사전에서는 '훈민정음의 현대적 명칭'이라고 요약해 놓았으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우리나라 고유 글자의 이름(링크는 네이버 국어사전. 내용 동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글이란, '글자'이지 '언어'가 아니다.
한국어를 배운다는 말과 영어 또는 일본어를 배운다는 말이 서로 대응할 수 있는 개념이라면 한글을 배운다는 것은 알파벳 또는 (히라/가타)가나를 배운다는 것과 대응된다. 즉, 한글을 배우는 것은 단지 ‘글자’를 배우는 것만을 의미한다. 우리가 어학연수를 가서 알파벳이나 히라가나만 배우고 오는 것이 아닌 것처럼 한국으로 어학연수를 온 사람들, 이곳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이곳의 언어를 익히고 있는 이주여성과 이주 노동자들은 한글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를 배우고 있으며 그들의 한국어 학습 첫 단계에 바로 한글이 자리 잡고 있다.
여러 기사에서 사용하는 표현처럼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이 많다면 그 외국인들은 한글 자모의 모양과 음가(音價), 조금 더 확장된다면 자모의 조합과 그 읽는 법까지만 배운다는 말이다. 1년째 한글을 배운다면 위의 사항을 1년째 배우고 있다는 말이고 한글 학습 교재가 발간되었다는 것은 자모의 읽는 법을 소개하고 연습 시키는 교재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들이 사용했어야 하는 단어는 '한글'이 아니라 '한국어'다. 한글을 한국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한글과 한국어에 대한 개념은, 한글이 15세기에 창제되었다고 말하면 그 전까지 한국 사람들은 어떤 언어로 대화를 했냐고 물어보는 우리 반 학생들의 그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들은 기사 속에서 한글의 우수성이라든지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언어라는 측면(그것도 별 깊이도 없이), 한국어의 세계화 등에 초점을 맞추고 외국인들이 한글을 극찬한다거나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늘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한글'을 배운다는 것과 '한국어'를 배운다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부끄럽고 웃지 못할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사실, 이것 외에도 이 사람들이 그 어렵다는 언론사 취직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취약한 맞춤법과 문장 구성력을 자랑하는 사례들은 얼마든지 찾아 낼 수 있다. 그렇지만 최소한, 한국어와 한글에 대한 기사라면 한글과 한국어를 구별하여 쓰는 것은 '예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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