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새다리의 한국어 가르치는 이야기
한국어 강사가 갖춰야 할 것들 2 - 외국어에 대한 이해 본문
직업이 한국어 강사라고 하면 처음 만나는 사람의 반 이상은 '어! 외국어 잘 하시겠네요.'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나는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외국어가 없다. 영어로는 배운 가락이 있으니 어설프게나마 간단한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영어 잘하는 사람은 차고 넘치니 어디 가서 영어로 말할 수 있다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뭐, 그렇다고 한국어 강사들이 모두 나와 비슷한 수준은 아니다. 외국어 전공자가 많은 데다가 어학 강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언어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의미해서인지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 하나쯤 가지고 있는 강사가 많은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어 강사가 되려면 꼭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할 줄 아는 외국어가 있으면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일본어를 잘하는 강사라면 어떤 문법이나 표현을 가르칠 때 일본인 학습자가 그 표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떤 오류가 발생할지를 더 쉽게 예상할 수 있고 왜 그런 상황이 발생하는지도 알기 쉬울 것이다. 따라서 오류 생성을 막는 방법을 미리 연구할 수도 있고 오류가 발생했을 때 더 나은 방법으로 설명하는 것도 가능하다. 학습자들도 자신의 모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강사에게 더 친근감을 느끼고 편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채용시에도 자신과 같은 조건의 지원자보다 유리할 수도 있다. 또한 때에 따라 특정 국가의 학습자가 늘면 그 국가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강사를 선호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외국어 구사 능력이 필수도 아니고 그렇게 크게 당락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지는 못한다고 생각하며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가 없다고 해서 한국어 강사로서 자격 미달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 대신 한국어 강사는 학습자의 모국어의 체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아니,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어떤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면 학습자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 외에도 교수-학습 자체에도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국내에서 가르칠 때는 한 교실 안에 다양한 언어권에서 온 학습자들이 앉아 있기 때문에 나에게 친근한 언어권 학습자에게만 맞춰서 수업을 진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해서 모든 외국어를 다 배울 수도 없다.
외국어를 배울 때 단지 문법과 표현의 의미와 철자만 달달 외운다고 해서 종합적인 실력이 늘지는 않는다. 목표 언어가 근본적으로 모국어와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목표 언어의 체계와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강사 역시 학습자가 나와는 다른 바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 알고 있는 것이 그 학습자를 가르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학습자의 언어 체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하니까 많이 어렵고 거창한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이 들리지만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 언어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력이 된다면 깊이 공부하는 것이 좋겠지만 어떤 문법이나 표현을 가르치기 전에 미리 간단한 사항 몇 가지를 참고로 알아 놓는 정도로도 많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요일 수업의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해 볼까?
초보 강사 때의 일이다. 요일 어휘를 배우고 요일을 묻고 대답하는 대화까지 확장하는 것이 그날의 목표였는데 학습자는 중국인 한 명이었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한자를 쓰면 웬만큼 통할 것이라고 믿고 있던 나는 도입, 제시 단계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고자 '요일'이라는 단어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어휘를 한자로 메모해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은 내 한자가 아니라 달력 그림으로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초보 시절 이런 경험을 한 강사들이 주변에 좀 있는데 특히 일본에서 요일 어휘가 우리말과 같은 체계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 더욱 자신있게 중국인 학습자에게도 같은 방법을 시도해 본다.
그렇지만 중국에서 요일을 표현하는 말은 우리말이나 일본말과는 다르게 1, 2, 3…의 숫자를 사용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 부끄러웠다. 안일한 생각으로 사전 조사도 안 해 보고 써 놓고는 학생이 그걸 왜 이해 못하는지 의아해한 것이다. 심지어 어떤 강사는 학생이 센스가 없어서 자기들 글자로 썼는데도 이해를 못하더라고 불평하기도 했는데 말이다. 1
쉽게는 조사가 존재하는 언어가 많지 않아서 학습자들에게는 조사는 개념 이해 자체가 어렵다는 것부터 프랑스인 학생이 'ㅎ'을 종종 'ㅇ'으로 발음하는 것이 공부를 안 해서만이 아니라 프랑스어에서는 'h'의 발음이 묵음인데 'ㅎ'을 'h'로 대치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 일본인 학습자가 조사를 바꿔서 말하는 것도 공부를 안 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모국어 간섭 때문이라는 것, 몽골 학생은 'ㅡ' 발음을 잘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 어떤 문화권에서는 '책상 위에 책이 있다'는 표현보다 '책 아래에 책상이 있다'는 표현을 더 나은 표현이라고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아 두는 것은 별게 아닌 것 같지만 중요하다. 물론 모국어의 간섭이 있다 해도 학생의 학습 부족 탓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학습자의 모국어에 대해 알게 되면 학습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단지 '네가 공부하고 외워라'가 아니라 '너희 말과 이렇게 다르니까 조심해라'라고 설명해 줄 수 있다. 그편이 학생 입장에서도 부담도 덜하고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학습자의 언어 배경을 이해하지 못해서 수업 진행이 어려웠을 경우에도 간혹 강사들이-나를 포함해서- 자신이 학습자의 언어 배경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학습자가 노력하지 않는다든지 머리가 나쁜 것 같다는 식으로 불평을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뒤늦게 그 이유를 알게 되면-계속 모를 수도 있지만-스스로의 부족함과 경솔함, 오만함이 매우 부끄러워진다.
특히, 영어나 일본어가 아닌 언어권에서 온 학생들에 대해서 이런 경우가 더 많이 발생하는데 이는 익숙하지 않은 언어라서 강사의 배경지식이 부족한데도 그만큼 노력하지 않는 탓이다.
'내가 외국어 배울 때도 내가 노력해서 하는 것이니까 내 학생들도 알아서 해야지'라는 생각을 한다면 강사로서 자격이 없는 것 아닐까? 강사는 가르치는 사람이고 잘 가르치는 것이 의무다. 잘 가르치려면 해야 하는 여러 가지 중에 학습자의 언어 배경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설명하고 연습 시키는 것도 그 의무에 포함된다.
따라서 좋은 한국어 강사가 되려면 어떤 외국어를 마스터하는 것만큼이나 다양한 외국어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정보를 알아 두려고 노력해야 될 것이다. 물론, 이런 것은 이력서에 쓸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긴 글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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