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새다리의 한국어 가르치는 이야기
어느 권태기 한국어 강사의 고백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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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 아침, 긴장감과 설렘으로 두근거리다가 크게 심호흡을 하고 교실 문의 손잡이를 돌리면서 마치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담임반 부담임반 모두 스무 명 남짓하는 학생들에 대해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고 한 명 한 명이 내 말을 이해했는지 신경 쓰면서 틈틈이 쉬는 시간에도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의 학생을 불러서 설명하고 이해 시켰다. 숙제 검사를 하면서도 일일이 세부 사항에 대한 코멘트를 달아 줘야 직성이 풀렸으며 수업을 하고 있는 순간이 하루 중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햇수로 8년이 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경력의 나는 이제 권태기 강사가 되고 말았다.
여전히 이 일은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지만 나는 어느새 '행복'을 잃어버렸다. 어느 순간 바람 빠진 풍선처럼 가라앉아서 재미도 못 느끼고 즐거움도 못 느끼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뒤돌아 보면 이 상태로 지난 1년을 지냈다. 굳이 핑계할 거리를 찾자면 같은 급을, 그것도 한국어 강사가 된 후로 지겹게 여러 번 가르쳐 온 급을 또 다시 연속으로 맡은 것도 권태기를 불러 온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새로울 것도 없고 눈 감고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잘 알고 있다는 자만에 수업 준비도 더 소홀히 하고 수업 자체에서 재미도 못 느꼈다.
학생에 대한 애정도 열정도 식어서 머리로는 모든 학생을 끌고 가야 한다고, 뒤처지는 학생이 있으면 그에 맞게 설명하고 연습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전처럼 하나씩 붙잡고 지도하지도 않고 아니, 어쩌면 관심조차 갖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니 나에게 남는 게 없었다. 누군가는 학생들에게 애정을 쏟아도 학생들에게 잘해 줘도 소용이 없다고 그냥 잘 가르치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만 난 애정과 열정이 없으니 잘 가르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고 그리고 결국 나에게 남는 게 없었다.
수업 시간에 교안에 쓰여 있는 대로 잘 설명하고 좋은 예문을 드는 것은 애정과 열정이 없이도 가능했지만 교실에 앉아 있는 10명의 학생 각각이 가능하면 많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애정과 열정이 없이는 불가능했고 그러다 보니 매학기 과정을 마치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학생들을 보기가 부끄러워졌다. 내가 더 잘했으면 유급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내가 더 잘했으면 더 좋은 실력을 갖출 수도 있었을 텐데 게으르고 무책임한 나 때문에 지금의 결과만을 얻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는 게 없었다는 것은 비단 이것만은 아니다. 나는 나와 학생들 사이에 존재했던 보이지 않는 뭔가를 잃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이 블로그를 통해 토로하던 한국어 강사라는 직업의 단점들과 내가 일하는 기관에서 벌어지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들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내가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작지만 뭔가를 해 주면서 힘을 얻은 것은 결국 나였다. 학생들에게 잘해 줘도 소용없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고국으로 돌아간 학생들은 연락이 끊기기 일쑤고 귀국하지 않고 한국에 머물러도 한국어 교육 기관을 떠난 후 기억하고 찾아오거나 가끔이라도 연락하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그런 가시적인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들과 같은 교실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들과 나 사이에 오가는 애정과 신뢰를 통해 형성되는 무엇, 그것이 바로 내게 남는 것이고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했고 힘내게 했다.
그런데 권태로움 속에서 애정도 열정도 없이 습관적으로 학생들을 대하는 동안 난 전보다 덜 행복했고 학생들을 통해 힘이 나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다. 또한, 나의 권태는 나만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 기간 동안 나를 거쳐 간 학생들은 내가 권태를 느끼지 않았더라면 더 나은 학습 조건을 제공받을 수 있었을 것 아닌가.
이렇게 되고 보니 내가 한국어 강사라는 직업을 계속 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 하나가 사라져 가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직업이라는 기대, 지식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의 의사소통을 통해 생각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직업이라는 기대를 하고 뛰어 든 것인데 나는 내 결심의 기본을 조금씩 잊고 있었다.
이런 나의 상태를 알면서도 1년을 보낸 건지 이번 방학을 보내면서 새삼 깨닫게 된 건지 나조차도 잘 모르겠다. 단지 이제 이 상태를 끝내야 한다는 것만 명확히 알 뿐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 새 교실 문 앞에서 긴장과 설렘으로 가득찬 두근거림까지는 다시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강사라면 가져야 할 자세라고 생각해 온, 그래서 지켜온 것들을 다시 되새기면서 올해의 네 학기를 채워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일년 후, 올해를 마무리하는 글을 쓸 때는 권태기를 극복한 자신을 기특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러나 햇수로 8년이 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경력의 나는 이제 권태기 강사가 되고 말았다.
여전히 이 일은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지만 나는 어느새 '행복'을 잃어버렸다. 어느 순간 바람 빠진 풍선처럼 가라앉아서 재미도 못 느끼고 즐거움도 못 느끼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뒤돌아 보면 이 상태로 지난 1년을 지냈다. 굳이 핑계할 거리를 찾자면 같은 급을, 그것도 한국어 강사가 된 후로 지겹게 여러 번 가르쳐 온 급을 또 다시 연속으로 맡은 것도 권태기를 불러 온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새로울 것도 없고 눈 감고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잘 알고 있다는 자만에 수업 준비도 더 소홀히 하고 수업 자체에서 재미도 못 느꼈다.
학생에 대한 애정도 열정도 식어서 머리로는 모든 학생을 끌고 가야 한다고, 뒤처지는 학생이 있으면 그에 맞게 설명하고 연습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전처럼 하나씩 붙잡고 지도하지도 않고 아니, 어쩌면 관심조차 갖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니 나에게 남는 게 없었다. 누군가는 학생들에게 애정을 쏟아도 학생들에게 잘해 줘도 소용이 없다고 그냥 잘 가르치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만 난 애정과 열정이 없으니 잘 가르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고 그리고 결국 나에게 남는 게 없었다.
수업 시간에 교안에 쓰여 있는 대로 잘 설명하고 좋은 예문을 드는 것은 애정과 열정이 없이도 가능했지만 교실에 앉아 있는 10명의 학생 각각이 가능하면 많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애정과 열정이 없이는 불가능했고 그러다 보니 매학기 과정을 마치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학생들을 보기가 부끄러워졌다. 내가 더 잘했으면 유급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내가 더 잘했으면 더 좋은 실력을 갖출 수도 있었을 텐데 게으르고 무책임한 나 때문에 지금의 결과만을 얻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는 게 없었다는 것은 비단 이것만은 아니다. 나는 나와 학생들 사이에 존재했던 보이지 않는 뭔가를 잃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이 블로그를 통해 토로하던 한국어 강사라는 직업의 단점들과 내가 일하는 기관에서 벌어지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들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내가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작지만 뭔가를 해 주면서 힘을 얻은 것은 결국 나였다. 학생들에게 잘해 줘도 소용없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고국으로 돌아간 학생들은 연락이 끊기기 일쑤고 귀국하지 않고 한국에 머물러도 한국어 교육 기관을 떠난 후 기억하고 찾아오거나 가끔이라도 연락하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그런 가시적인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들과 같은 교실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들과 나 사이에 오가는 애정과 신뢰를 통해 형성되는 무엇, 그것이 바로 내게 남는 것이고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했고 힘내게 했다.
그런데 권태로움 속에서 애정도 열정도 없이 습관적으로 학생들을 대하는 동안 난 전보다 덜 행복했고 학생들을 통해 힘이 나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다. 또한, 나의 권태는 나만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 기간 동안 나를 거쳐 간 학생들은 내가 권태를 느끼지 않았더라면 더 나은 학습 조건을 제공받을 수 있었을 것 아닌가.
이렇게 되고 보니 내가 한국어 강사라는 직업을 계속 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 하나가 사라져 가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직업이라는 기대, 지식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의 의사소통을 통해 생각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직업이라는 기대를 하고 뛰어 든 것인데 나는 내 결심의 기본을 조금씩 잊고 있었다.
이런 나의 상태를 알면서도 1년을 보낸 건지 이번 방학을 보내면서 새삼 깨닫게 된 건지 나조차도 잘 모르겠다. 단지 이제 이 상태를 끝내야 한다는 것만 명확히 알 뿐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 새 교실 문 앞에서 긴장과 설렘으로 가득찬 두근거림까지는 다시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강사라면 가져야 할 자세라고 생각해 온, 그래서 지켜온 것들을 다시 되새기면서 올해의 네 학기를 채워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일년 후, 올해를 마무리하는 글을 쓸 때는 권태기를 극복한 자신을 기특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긴 글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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