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새다리의 한국어 가르치는 이야기

한국어 강사, 쉽지는 않습디다. 본문

나는 한국어 강사다

한국어 강사, 쉽지는 않습디다.

간새다리 2009. 10. 18.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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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9년 5월 31일에 싸이월드 블로그에 올려 놓은 글입니다.




"우리말 가르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공부까지 해?" 

누군가 한국어 강사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 을 전공하겠다고 할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흔히 들을 수 있는 반응 중 하나다. 내 경우는 이런 말까지는 아니어서 주변 친척들은 선생질은 좋지만 청소년을 가르치기 싫어하고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 자체를 좋아하는 나에게 '그러게 선생 되라고 교직과정이수하고 교사임용고시 봐 두라고 할 때 진작 해 두지 이제 와서 뒤늦게 뭐 하는 거냐'는 초점을 못 맞춘 질책(?)을 하거나 '빨리 취직해서 돈 벌지 않고 (여자가) 또 무슨 공부냐'는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우려(?)를 보냈다.

 

 어쨌든, 사람들은 태어나서 평생 써 온 한국어를 외국인에게 가르치는 일이 누워서 떡 먹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즐겁게 수다나 떨다가 나오고 나머지 시간에는 띵가띵가 놀아도 되는 놀고 먹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간혹 만나게 된다. 내가 만난 어떤 대학생도 내게 "준비할 게 있나요?"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사회 생활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깨닫기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들이나 아직 진로를 정하지 않았으나 열심히 살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 지금까지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 좀 손 쉽게 일하고 싶다는 사람들, 딱히 다른 기술은 없으나 재교육 비용을 많이 쓰지 않고 이 상태로 새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사람들로부터 '한국어 강사가 되는 법' 내지는 '전망'에 대해 질문을 받고 그들의 태도에 불쾌해졌다는 한국어 강사가 꽤 많다. 나도 영어권 학습자를 위한 '유료' 한국어 학습 사이트에서 <해요체>를 <formal style>로 가르칠 만큼 비전문적인 강사가 외국어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을 보고 '정말 이사람 저사람 쉽게도 뛰어 드는구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나빴던 적이 있다. 주변에 차고 넘치는 전문 한국어 강사들은 박봉을 받으면서 일하는데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말 가르치는 일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쉽지 않고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수업 외의 시간에는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모국어를 습득하는 것과 외국어를 학습하는 것은 현저히 다르다. 모국어로서 한국어를 습득하는 사람은 설명이 없어도 제대로 쓸 수 있는 표현들을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습득하는 사람은 의미와 용법과 제약과 유사한 표현과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을 듣고서야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라면 그것을 간단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까지는  다 아는 얘기라고? 그런데 왜 사람들은 <한국어 교육>을 전공하는 것을 쓸데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한국어 강사라는 직업이 놀고 먹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건 아마 모어 화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모어 사용법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만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놀랍게도, '누워서 떡 먹기'일 거라는 생각에 외국 생활을 하면서 현지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봤거나 개인 수업을 해 봤거나 언어 교환을 해 본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에 당황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많다.

 해요체의 경우 도대체 '-아요/어요/여요'는 각각 언제 활용되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는 사람도 있고 'ㄹ탈락'은 언제 적용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고 한글을 가르칠 때 한국 어린이에게 가르치듯이 시도했다가 좌절한 사람도 있고 때로는 지나치게 국어학적으로 설명하려다가 실패한 사람도 있다. 이런 의미 설명 뿐 아니라 학습 단계와 교과 과정을 잘못 설정해서 기초 수준의 학생에게 '-아/어서'의 모든 의미를 한 번에 설명하려 하기도 하고 학습한 문법과 표현의 연습 활동을 잘못 설정해서 길을 잃기도 한다.

 

 우리들이 '한국어 교육'을 전공하면서 배우는 것은 국어학이나 국어문법이 아니다. 물론, 국어 지식은 기본으로 전제 되어야 하는 조건이며 이것을 바탕으로 이것을 학습자에게 전달하는 방법과 교과과정을 설계하는 방법 등을 체계적으로 배운다. 외국어를 배우는 학습자가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 문법, 발음 각각을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방법과 평가에 대한 방법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의 외국어 교수-학습 등 말이다. 물론 타전공 출신의 강사들도 있지만 그 분들도 그만큼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를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한다.

 

 공부는 한국어 강사가 된 후에도 계속된다. 대학원에서는 개별적인 문법이나 표현의 교수법이 아니라 전반적인 교육론에 대해 공부한다면 강사가 된 후에는 매일 수업해야 하는 개별적인 문법을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문법을 설명하고 제약을 주는 방법과 연습 시키는 방법 혼동하기 쉬운 표현과 구분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내가 가르쳐야 하는 것은 국어학이 아니라 외국어로서의 한국어이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국어문법으로서 설명할 때와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학습자들에게는 전혀 당연하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에 모어 화자인 나의 시각이 아니라 그들의 시각으로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급에 맞춰서 어떻게, 어디까지 설명할 것인지도 과제다. 1급 학습자에게 해당 문법이나 어휘의 모든 의미를 한꺼번에 쏟아 부을 수도 없고 1급부터 6급까지 모두 한국어로만 수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간단명료하게 설명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일주일 수업을 위해 급별 회의도 해야 하고 중간/기말 시험 출제도 하며 숙제 검사도 한다. 교육 기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근무하는 기관의 경우 중고급반으로 올라갈수록 쓰기 숙제의 분량이 많아지기 때문에 숙제 검사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초급의 경우 숙제 검사 시간은 짧지만 때때로 부교재나 교구를 제작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편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것을 다 생각할 때 하루 네 시간 수업을 한다면 평균 3~4시간의 수업외 근무가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1시간 수업 진행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와 긴장감이 꽤 크고 강사라는 것이 학생이라는 '인간'과 대면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생기는 '대인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갖는다.

 

 물론, 겨우 이 정도 일하는 것을 가지고 힘들다고 낑낑대냐고 말한다면 딱히 항변할 말은 없다. 한국어 강사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일도 많다는 걸 아니까. 단지 내가 하고픈 말은 한국어 강사가 우리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 우리말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교육법을 연구하고 효율적인 수업 운용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 놀면서 돈 받는 편안한 일도 아니고 수업 시간 외에는 모든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직업도 절대 아니라 때로는 밤도 새우고 주말도 없이 일할 때도 있는, 일반적인 직업과 별 다르지 않게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혹시 당신, 한국어 강사가 되기를 꿈 꾼다면, 그것도 우아하게 여가를 즐기면서 여유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한국어 강사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라. 특히 외국어는 잘하지만 국어 실력은 별로고, 간단명료하고 정확하게 설명하는 능력이 없으며 읽고 쓰는 일을 즐기지 않고 사회성이 떨어지며 사회문화적인 촉수가 무디고 문화사대주의에 빠져있는 데다가 한국어 강사가 되면 하얀 얼굴의 금발을 많이 만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당신도 이 일을 하는 것이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어렵겠지만 당신 학생들도 고생할 테니 그냥 돌아서기를 권한다.

  한국어 강사는 당신이 생각하는, 누워서 떡 먹기에 견줄 만한 꿈 속의 직업이 아닐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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